-
-
피라미드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2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알바니아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은 적지 않게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잘못된 만찬>을 읽어본 인연과 년전에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피라미드를 구경했던 인연으로 <피라미드>를 읽게 되었습니다.
<피라미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26세기 무렵 파라오로 등극한 쿠푸의 피라미드가 건설되는 과정, 세월이 흘러 쿠푸를 비롯한 파라오들의 무덤이 도굴되는 과정에서 파라오 디두프리가 목졸려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집트 사회에 충격을 던지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14세기 중앙이시아를 지배하게 된 티무르 왕조가 오트라르에 해골을 쌓아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사실로 건너뛰면서 작가의 고국 알바니아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폭압으로 눌린 국가들이 여전히 있다고 고발하는 셈입니다.
사실 쿠푸는 등극한 직후에 자신만은 피라미드를 건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신하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제사장을 비롯한 신하들은 파라오를 설득하기 위하여 피라미드 건설의 당위성을 찾아냈습니다. 피라미드는 이집트 사회가 처한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하여 건설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집트 사회의 위기는 풍요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안락한 생활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독립심과 훨씬 자유로운 정신을 갖게 되고 일반적인 권위는 물론 심지어는 파라오의 권위에까지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심 끝에 내놓은 방안이 이집트 사회가 누리던 부의 일부를 고갈시킬 수단을 찾게 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벌이는 대규모 수로공사가 본보기감이 되었습니다. 땅 속에 있는 지옥의 방향으로 끝없이 구멍을 파들어 간다거나, 이집트 전체를 에워싸는 성벽을 쌓거나, 인공폭포를 만들거나 하는 안이 검토되었지만 언젠가는 공사가 끝날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되풀이될만한 일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채택되지 않았고, 결국은 파라오의 거대한 무덤을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로는 파라오와 죽음. 더 정확하게는 파라오의 신성(神性)이라는. 그런가 하면 피라미드는 가시적이었고, 아주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피라미드 건설이 유한성과 무한성을 모두 지녔다는 점이었습니다. 파라오마다 자신의 피라미드를 건설하게 되면, 피라미드를 건설한 파라오가 죽으면 새로 등극한 파라오가 자신의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피라미드가 건설되는 과정도 상세하게 설명이 됩니다. 이집트 각처에 산재해있는 채석장에서 피라미드에 사용될 바위덩이를 캐어 나르는데, 작업지시에 따라 각각의 채석장마다 미리 정해진 위치에 맞게 바위를 잘라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잘라낸 바윗덩이를 나일강 수로를 따라 피라미드 건설현장으로 옮겨져 경사로를 따라 차곡차곡 제자리에 놓아 쌓아올렸던 것입니다.
풍설에 따르면 피라미드는 하늘과 땅 사이의 균형을 상징했다고 합니다. 피라미드가 하늘의 빛과 땅의 암흑을 빨아들이면 동굴 안에서처럼 그 둘 사이에 내통과 교합이-심지어는 근친상간이-안에서 은밀하게 성사된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피라미드는 천상의 종자나 빛을 빨아들인다기보다 이집트를 통째로 먹어치우는 무엇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그들이 겪은 속박과 축적된 고통을 떨치고 새로운 이집트, 수정처럼 맑게 빛나는 이집트가 탄생했다고 믿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합니다. 쿠푸 역시 피라미드에 대하여 끌림과 증오심의 양면적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피라미드의 도굴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된 다음에는 피라미드가 노화되는 과정에 대하여도 설명합니다. “흰빛이 급속히 윤기를 잃어 이제 분홍빛이 감돌게 된 것을 제외하면 사람들의 눈으로는 변화를 감지할 수 없었다. 팔백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주름살이 하나둘 드러나 보였다.북쪽 면의 돌 하나가 12월 어느날 오후 맨 먼저 갈라졌다. 그전에 이미 주춧돌 여섯 개가 부서진 바 있었다. (…) 천오십년이 지나자 마모의 흔적이 멀리서도 분간되기 시작했다.(152쪽)” 아무리 돌로 지었다고는 하나 피라미드 역시 세월에 따른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