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가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을 읽었습니다. 2016년에 폴란드를 여행한 탓에 폴란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낮의 집, 밤의 집>이라는 제목에서 집이라는 대상을 낮과 밤으로 구분해놓은 것을 보면 집으로 나타낸 무엇의 이중성을 담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목차에 무려 102개나 되는 제목을 담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그 제목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다양하고, 등장인물에 따라 이야기들이 단속적으로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방랑자들>에서 보였던 서술방식을 차용하고 있는데, 이런 서술방식을 별자리 소설이라고 한답니다.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이야기가 이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단문이나 짤막한 삽화들을 였어 하나의 이야기로 빚어내는 토카르추크의 독특한 서술방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삽화들은 서로의 주제들이 결합하면서 작가가 의도하는 통합된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별 들이 모여서 성좌를 이루듯 말입니다.


삽화가 무려 102개나 되다보니 폴란드를 중심으로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등 이웃나라와 관련된 광범위한 자료들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체코와의 국경에서 멀지 않은 크워츠코 계곡에 있는 피에트노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역사, 독일 정착민들에 관한 이야기, 등장인물들의 꿈, 성녀 쿰메르니스의 전설 등을 촘촘히 짜 넣고 있습니다.


삽화들에서 중요한 요소들은 꿈과 집입니다. 첫 번째 삽화 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첫날 밤에 나는 움직이지 않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몸도 이름도 없는 순수한 시선이다. 나는 모든 것 또는 거의 모든 것이 보이는 애매한 지점의 계곡 위 높은 곳에 매달려 있다. 나는 그 시선 안에서 움직일 수 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11)” 나는 나이면서도 나 같은 것은 없다고도 합니다.


화자가 이웃인 마르타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집의 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로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 곳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아마도 실재하는 집은 낮의 집, 실체가 분명치 않은 집은 밤의 집인 듯합니다. 이런 설명을 읽으면서 다중우주의 개념을 차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대가 국경마을인 까닭인지 국경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도 있습니다. 여늬 국경마을이 그렇듯 화자의 집에서 체코 공화국의 땅이 보이고, 여름에는 체코 쪽에서 개 짖는 소리, 수탉이 우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고 가깝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경은 수 세기 전부터 두 나라를 서로 다른 나라로 분리해놓았다는 것입니다. 나무들은 자신의 자리 밖으로 넘어가지 않고 국경을 중요하게 여긴 반면, 동물들은 어리석게도 그 경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국경을 두고 묘한 행동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독일사람 페터 디에터는 오래 전에 폴란드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 옛날 살던 곳을 구경하기 위하여 국경을 찾았다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내 에리카는 남편을 배려하여 동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페터의 주검을 체코의 국경수비대가 발견하였는데 경계선에 누워있는 페터의 몸을 폴란드 쪽으로 밀어냅니다. 그런가 하면 30분 뒤에 나타난 폴란듸 국경 수비대원 역시 페터의 몸을 체코 쪽으로 옮겨 놓습니다.


폴란드의 국경수비대원은 국경을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을 하는데, 가끔은 넋을 잃고 자기 앞에 펼쳐진 세상을 마치 그림처럼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늑대와 조우한 그는 늑대여 국경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라고 말합니다.

폰 괴첸 가문 사람들의 죽음도 인상적입니다. ‘죽음은 그들에게 안개처럼, 갑작스럽게 전기가 끊기듯이 다가왔다. 그들의 눈이 어두워지고, 그들의 호흡이 느려지고,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사망했다.(309-310)’ 행복한 죽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