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오기 전에 - 프루스트 단편선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 / 현암사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금년은 프루스트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프루스트의 작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 해도 국일미디어, 열화당, 펭귄클래식, 동서문화사, 민음사 등 다섯 곳에서 새로 번역한 작품들이 완간을 앞두고 있고, 그의 단편들을 묶은 단편집들도 여러 종류가 출간되고 있습니다. 단편집들의 경우는 골라 뽑은 단편들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아서 아쉬운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밤이 오기 전에>도 프루스트의 단편들의 일부를 묶은 단편집입니다. 모두 18편의 글을 골랐는데 모두 20대 초중반에 쓴 글들이라고 합니다. 1부에 담긴 6편의 단편들은 작가의 생전에 발표된 것들이고 2부에 담긴 12편은 미공개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20대에 쓴 작품들이라서인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비교하면 다소 투박한 느낌이 들지만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사교계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적지 않은 것을 젊은 시절 프루스트의 사교계의 경험을 녹여낸 것으로 보이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습작으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 작품 <무관심한 이>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앙투안 바토의 동명의 그림과 <어린 소녀>라는 두 작품의 대조적 분위기를 이야기에 담은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밤이 오기 전에>는 동성을 사랑한 여주인공이 스스로의 가슴에 총을 쏘아 죽음을 앞둔 상황에 찾아온 이성 친구에게 속마음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프루스트적인 색채가 많이 느껴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스스로를 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매우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그런 절망의 순간들 중 하나에 놓여 있었을 때 나 자신이 쏘았던 거예요.”


그녀가 죽음을 맞는 순간에, “우리는 함께 울었다. 슬프면서도 무한한 조화의 일치, 우리의 합체된 연민은 이제 우리 자신보다 거대한 대상을 향했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마음껏 자유롭게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나는 가여운 눈물로 흥건히 젖은 그녀의 두 손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새로운 눈물로 젖어들었고 그녀는 한기를 느꼈다. 그녀의 손은 분수대에 떨어지는 창백한 나뭇잎처럼 차가워졌다. 우리는 그 순간만큼 그렇게 아파했던 적이, 또 좋았던 적이 없다.”


프루스트 자신이 천식으로 고통을 받았기 때문인지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이야기가 많은 듯합니다. <추억1>에서는 불치의 병으로 쇠약해진 여자 친구를 문병하는 이야기합니다. 못 알아볼 정도로 초췌해진 그녀는 바닷가에서 정양 중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바닷가 풍경이 묘사됩니다. 먼저 여주인공 오데트의이야기입니다. “저 끝없이 푸른 바다를 보는 건 정말 매력적이에요. 모래사장에 와서 부서지는 파도는 저를 슬픔에 빠지게 하는 생각들이고, 동시에 이제는 작별을 고해야 하는 희망들이에요.(51)” 한창 잘 나갈 때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못한 회한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와 헤어져 바닷가에 나온 화자는 나는 바닷가로 나왔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오데트에 대한 생각에 잠겨 무관심하고 고요한 긴 해변을 따라 걸었다. 태양은 수평선 너머 사라졌지만, 자줏빛 광선으로 하늘을 여전히 물들이고 있었다.(52-53)” 결국은 무로 돌아갈 상황을 바닷가 풍경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 담긴 이야기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분위기는 결코 우울하거나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을 구원할 무언가가 내재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