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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220
제프리 초서 지음, 김진만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4월
평점 :
고전독서회의 8월 모임에서 읽기로 한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제프리 초서는 14세기 후반에 활동한 영국의 철학자이자 작가였으며 궁정에서 일한 관료로 영문학의 아버지로 평가됩니다. 13세기말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르네상스 운동을 영국에 이식하는데 일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초서가 활동할 무렵의 영국은 기사 중심의 봉건제가 기울고 상인을 중심으로 한 신흥계급이 부상하던 과도기였습니다. 초서는 신흥계급 출신이었습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당시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켄트주의 캔터베리에 있는 토머스 베켓 사원까지 가는 순례여행에 참가한 사람들이 여행길에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정리한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29명이 참가한 일종의 단체여행이 된 셈인데, 순례를 목적으로 한다지만 사람들이 세상을 구경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켄터베리는 런던에서 동쪽으로 60마일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런던에서 템즈강을 건너 도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서더크의 타바드 여인숙에 모여든 순례객들이 말을 타고 도버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 사흘반에서 나흘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고 합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초서가 1387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써간 미완성된 작품입니다. 타바드 여인숙에 모여든 30명의 순례객들이 캔터베리로 떠나는 날 여관의 주인 해리 베일리는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순례객들이 갈 때와 돌아올 때 각각 두 가지씩 이야기를 하고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는 식사를 무료로 대접하겠다고 말합니다. 일종의 이야기 시합을 제안한 셈입니다. 무려 120편의 이야기나 나올참이었지만, 미완성된 이야기를 포함한 스물네 편만이 소개되었고, 어느 이야기가 대상을 차지했는지도 정해지지 못했습니다.
이야기에는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남녀가 나옵니다. 옮긴이가 작품해설에서 정리한 내용을 보면 기사 등 궁정사람들, 수녀원장 등 교회에 관계된 사람들, 대학생과 의사 등 지식계급, 무역상인 등 산업계의 신흥계급, 시골유지가 지주계급을, 농부와 선장을 비롯하여 요리사, 방앗간 주인 등 노동자계급 등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위기로 보아 당시의 영국에서는 이미 신분에 따른 차별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직업, 계급에 속하다보니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도 저급한 것에서 고급한 것에 이르는 다양한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서부터 역사적 인물들의 비화가 인용되고, 당대의 영국사회에서 벌어졌음직한 이야기들이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이어집니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이야기와 별도로 머리글, 발문,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등장인물들 사이에 오간 이야기를 막간극 형식으로 배치하는 독특한 이야기 틀을 만들어냈습니다.
여성이 우위를 차지하는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혼인의 신성함을 지키는 여성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유부녀를 유혹하는 남성, 자유연애를 즐기는 유부녀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가 하면 마지막에 등장하는 교구사제의 이야기는 분량도 많을뿐더러 지은 죄를 참회함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교만, 분노, 질투, 나태, 탐욕, 탐식, 간음 등 기독교에서 말하는 7대 죄악을 설명하고 그 죄에서 구원을 얻는 방법도 설명합니다. 저자는 교만을 모든 악의 원천이라고 보았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탐욕이 악의 원천이 아닐까 싶습니다. 탐식과 간음은 탐욕의 아류가 아닐까요? 탐욕의 종류 가운데 만취도 나옵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이성을 잃게 되므로 중대한 범죄가 된다고 하면서도 평소에 독한 술을 마시지 않아 술의 강도를 모르거나 의지가 약하거나 과로 때문에 평소와 달리 갑자기 술에 취했다면 결코 무거운 죄가 아니라 가벼운 죄’라고 하는 설명을 술꾼들에게는 좋은 변명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