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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ㅣ 한빛비즈 문학툰
SunNeKo Lee 그림, 정미선 옮김, 빅토르 위고 원작, Crystal S. Chan / 한빛비즈 / 2022년 8월
평점 :
한빛비즈의 만화툰 연작 가운데 두 번째로 읽은 책은 <레 미제라블>입니다. 10년쯤 전에 민음사에서 새로 번역하여 소개한 <레 미제라블>을 읽은 기억이 아직 남아있어 만화를 읽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서 읽은 <주홍글자>가 단행본을 만화로 옮긴 것과 비교하면, <레 미제라블>은 민음사 번역판 기준 2,55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한 권의 만화에 담기가 수월치 않았을 것입니다.
원작에서는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라거나, 워털루 전쟁을 비롯한 당시 프랑스의 사회상을 미주알고주알 풀어놓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장발장과 코제트가 등장인물들과 엮여 풀어가는 이야기의 중심만을 요약한다면 한 권의 만화에 담아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소설에서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설이 늘어지는 반면 만화는 하나의 장면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등장인물들이 서로 엮이는 배경을 설명하기 위하여 밑밥을 깔아두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만화에서는 이런 점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듯합니다. 결국 핵심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의 전개에 집중하는 경향입니다.
설명이 많이 생략되다보니 인물의 성격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길거리 소년 마리우스의 경우도 시가전에 갑자기 등장하여 혁명군에 도움을 주는 것만 나오지만 당시 파리에는 이런 어린이들이 넘쳐나고 있었던 것은 복지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는 점은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화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로는 당연히 장발잔과 코제트, 팡틴, 마리우스 등 코제트와 관련이 있는 인물들의 비중이 크고, 악역으로 등장하는 테나르디에 부부의 비중이 지나치게 큰 것 같습니다. 물론 자베르 경감은 오랜 세월 장발잔을 뒤쫓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비중을 맞추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마리우스가 시가전을 치르는 동안에 도움을 주는 마리우스라는 소년에 대한 설명도 생략되어 있습니다.
원작에 나오는 명대사들이 생략되어 있는 점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예를 들면 감옥에 출옥한 장발잔의 심리상태를 요약한 “마음이 메마르면 눈도 마른다. 형무소를 나올 때까지 십구년 동안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린 적이 없었다.”라는 대목을 설명문으로 넣었더라면 좋았겠습니다. 만화의 전편에 걸쳐 대화 혹은 독백이 대종을 이루고 지문은 별로 없기 때문에 감동적인 구절들을 놓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은식기를 훔친 장발잔에게 은촛대를 빠트리고 갔다면서 챙겨주는 미리엘 신부님를 묘사한 다름 구절도 들어갔더라면 좋았겠습니다. “그는 신음하는 자와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몸을 구부렸다. 이 세상이 그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질병처럼 보였다. 그는 도처에서 열병을 느끼고, 도처에서 고통스러운 소리를 들었으며, 불가해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상처를 치료하려고 애썼다.”
장발잔이 코제트와 함께 자베르 경감의 추격을 따돌리고 수녀원에 잠입했다가 마차에 깔려 경각에 달린 생명을 구해주었던 포슐르방의 도움으로 코제트를 수녀원에 맡길 수 있게 되는 대목에서도 “그런데 신은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 수녀원은 코제트처럼, 장 발장 속에 미리엘 주교의 사업을 유지하고 완성하는데 이바지 했다.”라는 구절이 생략되어 아쉬웠습니다.
마들렌으로 변장하고 시장을 맡아 도시의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한다거나 팡틴과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비롯되는 코제트 돌보기와 같은 선행은 장발잔이 미리엘 신부와의 약속을 이행함으로서 스스로를 구원하게 된다는 결말에 이르도록 하는 장치라는 점이 도드라지지 못했던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