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 전염병 - 왕실의 운명과 백성의 인생을 뒤흔든 치명적인 흔적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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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부터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 2년하고도 반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대륙의 끝에 붙어있는 한반도 역시 세계적인 감염병의 유행을 피해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한반도에서는 어떤 종류의 전염병들이 유행을 해서 얼마나 피해를 입혔으며, 조정에서는 전염병의 유행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했는지 궁금하던 차에 만난 <우리 역사 속 전염병>입니다.


의학은 특히 현대에 들어와서 급속하게 발전해왔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은 과거의 질병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병명은 물론이고 증상에 대한 기술이 현대의학의 정의와 차이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 속 전염병>에서도 이런 한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의 기획으로 출발한 이 책은 악병, 온역, 홍역, 천연두, 콜레라 등 시기별 전염병의 유행상황과 함께 이에 대한 조정의 대응, 허준, 유상과 같은 의원과 의녀 등 의료진의 활약 및 <동의보감><마과회통> 등 의학서 간행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6)”라고 하였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기획의도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남아있는 자료들 가운데 전염병의 유행에 관한 자료들을 충분히 섭렵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왕조의 경우는 그나마 실록을 비롯하여 사대부들이 남긴 문헌들이 전해지고 있지만 고려왕조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왕조의 경우는 남아있는 자료라 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진단법이나 치료법이 전염병은 힘없는 백성은 물론 왕후장상도 피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 속 전염병>에서는 주로 왕실의 전염병 발생과 치료상황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전염병 등의 심각한 상황이라면 팔도에 장계를 내려 현황을 보고토록 하였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1750529일자 <영조실록>을 보면 여러도에서 역질로 사망한 자가 총 19,849명이었다는 기록을 인용하였습니다(233). 전국 규모의 역질 발생현황자료로는 유일하게 인용된 것이고, 권역별 발생현황에 대하여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염병의 발생현황도 단편적으로 기록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단편적으로 인용한 것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전염병이 발생하였을 때의 대응체계에 대한 언급도 분명치가 않습니다. 왕족의 전염병 감염에 대하여는 내의원의 의원을 비롯하여 의녀가 나서서 치료에 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백성들의 전염병 확산데 대한 대응체계에 대한 언급이 분명치가 않습니다. 1730(영조6) 1월에 한양에 홍역이 크게 유행하여 5부의 사망자가 만 명 이상 발생하였을 때 영조는 근시를 보내 여제를 거행하도록 명하였다고만 전합니다.


2부 전염병에 맞섰던 의료기관에서는 내의원, 혜민서, 활인서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는데, 전염병 치료를 전담했던 기관은 활인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성에서는 108-9가 살아난데 반하여 지방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각도마다 돌림병을 규휼하는 법이 <원육전><속육전>에 규정되어 있었지만 관리들이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였던 것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저자는 시대별 전염병의 발생현황과 전염병이 발생하였을 때 어느 부서가 어떻게 활동을 하는지에 대하여 자료를 찾아서 제대로 설명을 했어야 할 것입니다. 의원과 의녀제도에 대한 설명만 장황하고, 의원에 명하여 의서를 정리하도록 했다는 왕명이 전염병 관리에 얼마나 기여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전염병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 왕조별 전염별 발생현황이나 대응체계, 그리고 그 효과 등을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이 되었어야 이 책의 기획의도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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