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오늘의 젊은 문학 5
문지혁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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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라면 강을 쉽게 건너기 위하여 설치하는 구조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얕은 개울물에 돌덩이를 놓아서 징검다리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하여 깊은 물에도 다리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도로 위에도 다리를 놓아 건널목까지 돌아가지 않아도 길을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다리는 일종의 장해물을 뛰어넘기 위한 구조물인 셈입니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를 골라든 것은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문지혁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모두 8개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다이버’, ‘서재’,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등 처음부터 이어지는 세 작품은 통합세기라고 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다이버는 시제도 미래일 뿐 아니라 무대 역시 지구가 아닌 인공행성입니다. 두 번째 작품 서재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역시 통합세기라고 하는 미래의 어느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통일된 지구는 누리망을 통하여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개인은 정보를 습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종이책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식과 정보의 편향, 불균형, 독점을 옹호한 것으로 간주하고 엄벌에 처하는규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리망에 올려진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한 정보를 익히는 교육과정을 통하여 정부가 정한 직장에서 일을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각자의 개성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없는 세상입니다.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처벌을 받고 그 가족 역시 삶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전체주의 체계인 것입니다. 전체주의 체제를 다룬 이야기에서는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가기 마련인 듯합니다.


서재에서 10만여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다가 끌려간 아버지가 남겨준 책에는 아무런 내용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빈 책은 아버지이기도 하고, 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빈 책을 채워가다 보면 내가 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책에 부디 우리가 서로에게 서로의 다음 페이지가 되기를(93,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이라고 적었는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니 책을 써서 누군가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어졌습니다.


앞 부분의 세 작품이 미래 시점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나머지 다섯 작품은 과거 시점의 이야기들입니다. 시점은 다르지만, 여덟 작품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상실입니다. 작가는 재난이라는 공통점을 짚었습니다만 재난을 통하여 사랑하는 사람 혹은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대응방식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실에 굴복하여 스스로를 내던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기억해두고 싶은 대목이 있기 마련입니다. ‘폭수의 경우는 주인공이 미시간대학에 근무하는 교수를 찾아가는 대목이 나옵니다. “차에서 내리자 줄지어 늘어선 나무 사이로 탁 트인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남한의 절반보다 크다는 미시간 호수였다.() 누군가 호수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바다라고 착각할 법한 푸른 물빛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나뭇잎이 타는 것 같은 가을 특유의 냄새가 났다.() 나는 나무 아래 서서 한동안 호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규칙적인 듯하면서도 불규칙한 물결의 반짝임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문이나 나의 불확실한 미래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반복됐다. 영원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도 영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그 광경은 묘하게 감동적인 데가 있어서, 나는 인터뷰고 뭐고 그냥 여기 어디 벤치에 앉아 해가 다 저물 때까지 호수를 지켜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106)”


아일랜드라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드리아 해의 북쪽 끝, 이스트라반도 부근에 있다는 붕어빵을 닮은 섬 가즈(Gaz)도 흥미로웠습니다. 정말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뉴욕의 맨하탄에 있다는 조지 워싱턴 브릿지를 걸어서 건넌다는 이야기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에서는 걸어서 다리를 건너 본 적이 있어?’라고 물어봅니다만, 생각해보니 저도 한강에 걸려있는 다리 몇 개를 걸어서 건너 본 적이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한강 양쪽으로 조성되어 있는 강변도로를 따라 100km를 걸을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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