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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 - 불안과 고통에 대처하는 철학의 지혜
존 셀라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복복서가 / 2022년 2월
평점 :
2년 전에 루크레티우스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https://blog.naver.com/neuro412/221786919624>를 읽었습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 철학을 연구한 열정과 상상력이 풍부한 시인이라는 정도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흔히 에피쿠로스주의라고 하면 술과 식도락, 육체적 욕구 등 퇴폐적 방종을 연상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에피쿠로스 철학의 본질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데 있었다고 합니다. 행복하고 평온한 삶은 평정(ataraxia), 평화, 공포로부터의 자유, 무통(aponia)에서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원자론에 따라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원자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삶의 즐거움, 즉 쾌락은 네 가지의 유형이 있습니다. “먹는 행위와 같은 동적인 육체적 쾌락, 배고프지 않은 상태와 같은 정적인 육체적 쾌락, 친구들과의 즐거운 대화와 같은 동적인 정신적 쾌락,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상태와 같은 정신적 쾌락”입니다. 이들 쾌락은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지만 불안도 걱정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정적인 정신적 쾌락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정신적으로 평정상태에 이르려면 정신적으로 불안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에피쿠로스는 불안의 네 가지 원인을 규명하고 불안할 이유가 없는 까닭을 제시했습니다. 불안으로부터 해방되는 네 가지 처방인 셈입니다. 필로데모스가 정리한 에피쿠로스 철학의 정수를 요약한 ‘네 가지 처방(Tetrapharmakos)’는 이렇습니다. “신을 두려워 마라. 죽음을 염려하지 마라. 좋은 것은 구하기 어렵지 않으며, 끔찍한 일은 견디기 어렵지 않다.(77쪽)”
오늘날 우리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남녀가, 노소가 서로 대치하여 갈등을 빚고, 욕구와 불만을 다스리지 못하고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개인의 권리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앞세우다 보니 나의 권리가 타인의 권리에 앞선다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자리하게 된 탓으로 보입니다. 나의 권리가 중요하다면 타인의 권리 또한 중요하므로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결국 개인의 욕구를 적절한 선에서 자제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사람들이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을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을 추구해왔습니다. 이는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지 않은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인식이 널리 각인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타인과의 차이를 채워야 한다는 욕구가 불만과 불안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삶이 피폐해진 것입니다. 조그만 행복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삶이 즐거워질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에피쿠로스 철학의 설명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살아 있지 않으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살면서 두려울 것은 없다.(92쪽)’는 설명이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죽으면 어떻게 될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너무 일찍 죽는 건 아닐지 걱정하느라 정신력을 낭비하기보다 지금 이 삶을 즐기는 데 집중하라’는 설명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을 즐겨라(carpe diem)’라는 호라티우스의 유명한 경구에 따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진정한 철학을 길잡이 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소박한 생활에서도 충만함을 발견할 것이며 평온한 마음으로 그런 생활을 즐길 것이다.(114쪽)’라는 루크레티우스의 조언을 새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