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숨결 - 개정판
로맹 가리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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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다양한 매체에 글을 발표해왔습니다. 누리망 매체의 경우라고 해도 최근 것은 검색에서 확인되지만, 오래된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면에 발표된 것은 찾아보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최근에 여기저기 발표한 글들을 모아 정리하고 있습니다.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집 <마지막 숨결>1935년부터 1967년 사이에 다양한 잡지에 발표된 작품들을 모아 엮은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살아지고 없는 잡지들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묻혀 잊혀져가는 작품들을 다시 읽을 수 있게 만든 작품집인 셈입니다. 여기 실린 일곱 작품들은 다양한 지역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폭풍우가 남태평양 멜라네시아의 섬, ‘마지막 숨결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문지리의 경우는 영국 중심부의 C에 모인 비행사들이 아프리카의 차드에서 가봉, 아비시니아, 리비아, 에리트레아, 하르툼, 키레나이카 등지에서 벌인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십년 후, 혹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베를린 폭격에 나섰던 프랑스 로렌 비행연대의 비행사들의 이야기를, ‘냐마 중사는 아프리카 차드, ‘사랑스러운 여인은 중부 베트남, ‘그리스 사람은 그리스의 어느 섬이 무대입니다.


무대는 다양하지만 인격 분열, 도피, 자살 등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죽음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습니다. 작품들을 읽어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마무리에 당황하게 됩니다. ‘폭풍우에서는 예정된 일은 피하려 해도 일어난다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지키려다 오히려 잃고 마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마지막 숨결그리스 사람은 발표되지 않은 미완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특히 그리스 사람들에서는 그리스와 그리스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대목들이 있었습니다. ‘그 섬에는 그리스 정교 교회가 삼백 개도 넘는다는 대목에서는 산토리니의 해넘이를 떠올렸습니다. “해가 질 때, 이곳의 바다는 짙은 보랏빛이 되었다가 그 후에 선명한 적색으로 변한다. 그 모든 배들은 서로 바짝 다가서서 뱃머리들끼리 가볍게 입을 맞춘다. () 아시아에서 발생한, 보라색 날개를 단 폭풍우가 몰려와 하늘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 폭풍우는 하늘에서 길을 잃은 듯한 천둥 번개를 땅애 내리친다. 그러다가 갑자기, 태양이 빨갛게 농익은 토마토처럼 물컹물컹해지면서 자신의 무게를 주체하지 못해 몸을 질질 끌며 사라진다.(173)” 해무가 살짝 내려 기대했던 해넘이의 장관을 볼 수는 없었지만, 제가 본 해넘이 풍경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카이크라고 불리는 고기잡이배들이 마치 꿀을 모으는 붉은 나비들처럼 석양 속으로 모여든다.”라는 표현은 그날 해넘이를 보기 위하여 유람선이 모여들던 풍경을 닮았습니다.


이런 대목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에게 해와 하늘은 물결과 창공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거대한 혼돈 속에서 서로 뒤섞이는 여과된 빛과 안개의 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들어본 적이 없는 듯했다. 고전주의가 윤곽의 명학성과 분명함을 이미하는 것이라면, 그건 고전적인 바다였다. 물결들은 거의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고, 그래서 수평선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직선이 아니라 파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215)”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지중해는 하늘과 바다를 나누는 수평선이 분명치 않았던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자신을 살해해달라고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한다는 마지막 숨결에 나오는,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에 대해 말할 때, 그 여자가 아주 아름답고 지성적이고 완벽했다고 말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과장은 과거를 망각한 데서 비롯된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64)”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앞 문장에는 동의하나 뒷 문장에는 크게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 경험을 비추어보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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