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0
세스 노터봄 지음, 김영중 옮김 / 민음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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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이 네덜란드를 무대로 쓴 이야기입니다. 무대는 네덜란드이나 등장인물이나 이야기의 소품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출신도 등장합니다. 네덜란드가 근대에 해운 유통과 금융의 중심지였던 것이나 작가가 젊은 시절 여행을 즐겨했던 경험이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화자인 인니 빈트롭이 2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10년 간격으로 일어났던 이야기들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는 서른 살, 2부는 스무 살, 그리고 3부는 마흔 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시기적으로는 1963, 1953년 그리고 1973년입니다.


근현대의 네덜란드는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가 봅니다. 교회는 더 이상 서양사람들의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성풍속도 문란했던 것 같습니다. 남녀가 만나 관계를 맺는데 감정적 요소보다는 즉흥적이고, 그런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1부에서는 인니 빈트롭의 결혼이 파경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었고, 2부에서는 그보다 10년 전에 고모를 통하여 아르놀트 타츠를 만나는 과정에서 종교에 대한 신념이 해체되어가는 경향을 보여주었습니다.그런가 하면 3부에서는 10년 후에 아르놀트 타츠가 인도네시아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필립 타츠와의 만남을 통하여 일본의 다도와 중국의 노장사상에 대하여 논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르놀트 타츠와 필립 타츠는 연락을 끊고 살아왔고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염세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네덜란드가 특히 일본과 교류가 많았음인지 다도를 비롯하여 다완 등 일본문화에 대하여 깊이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과 관련된 사항이라고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는 말로 몇몇 사람들에 의하여 38선으로 분단되었다거나, 테레즈 고모가 찾아온 시점을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50년대 초라고 적었거나, 테레즈 고모의 집에서 만난 하녀 페트라의 약혼자가 한국에 지원병으로 파견되어 있다거나 하는 단편적인 이야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에 관한 언급이 눈에 띄었습니다. “인니의 기억이 희미해진 것은 그의 기억 장치들이 제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어가면서 과거의 지하세계로 가는 데 필요한 손잡이와 발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45)” 저장된 기억도 반복적으로 회상해내지 않거나, 기억을 되살리는 꼬투리가 없는 경우에는 쉽게 사라지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신의 존재 증명에 관한 신부님과의 토론을 읽다보면 알 듯 모를 듯합니다. 아마도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은 까닭으로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교리를 파고 들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타츠 부자는 전혀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어바지 타츠는 마치 시간의 노예인 것처럼 매우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반면 아들 타츠는 무를 추구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부정하는 자세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식(儀式)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창조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 타츠는 기간이라는 개념의 테두리 안에서 의식화하였고, 아들 타츠는 시간에 대한 거부로 의식화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의식화된 삶의 방식을 통하여 존재의 부조리함에서 벗어나려 다양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이야기의 주제는 고독과 죽음이 모둔 일관된 시간 체험이라는 더 큰 주제와 맞물려 있다고 했습니다. 즉 시간을 선형적인 삶의 운동으로 볼 것이냐 순환적인 삶의 운동으로 볼 것인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저자는 화자인 인니 보다는 타츠 부자를 통하여 삶의 의미를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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