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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평점 :
소설의 형식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일깨운 책읽기였습니다.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추크 작품들의 본질적 특징은 ‘경계와 단절을 허무는 글쓰기,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이라고 요약됩니다. 그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 2007년에 발표된 <방랑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작가는 소설을 가르켜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심오한 소통과 공감의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방랑자들>을 읽다보면 많은 여행을 통하여 얻은 이야기들을 엮어 놓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여행은 공간의 이동을 말합니다. 더하여 책과 신문 등을 읽어 경험하는 시공간의 여행도 있겠습니다. 다양한 여행경험을 통하여 얻은 100여 편의 이야기들을 엮어 <방랑자들>이 구성되었습니다.
‘<방랑자들>은 한 마디로 여행기’라고 규정한 옮긴이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100여 편이나 되는 이야기들을 엮어 602쪽이나 되는 대작을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요? 수십 쪽도 모자로 연속극처럼 몇 개로 나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불과 몇 줄에 불과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들 이야기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들로 나눌 수는 없었을까요? 물론 속편이 감흥이 덜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옮긴이에 따르면 이야기들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서로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발견된다고 하였습니다. 아직은 작품 전체를 놓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서 그 연결지점을 찾아내지 못한 까닭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일부 이야기들 사이에서는 굳이 공통점이라 할 만한 것을 찾을 수는 있지만 백여 편이나 되는 조각들을 하나로 꿰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인체 혹은 장기를 보관하는 박물관 혹은 기법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병리학을 전공하는 저 역시 특별한 사례들을 모아 교육 자료로 활용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포르말린에 담이 보관하였기 때문에 포르말린이 증발하거나 보관용기가 파손되었을 때 포르말린이 새어나오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포르말린이 발암성 물질이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요즘에는 플라스틱을 주입해서 이런 불편함을 없앴기 때문에 직접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색감이나 촉감은 실제 장기와 다소 다른 편입니다. 플라스티네이션이라고 하는 기법입니다. 폴란드 출신 독일의 해부학자 군터 폰 하겐스가 고안해 1977년 특허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체의 신비’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만, 사전에 기증받은 시신으로 ‘제작된 작품(?)’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사형수 혹은 돈을 주고 장기를 사들이기도 했다고 해서 법적, 윤리적 논란이 일었습니다.
작가 역시 인체 혹은 장기를 모아놓은 이티네라리움이라는 박물관에 관심이 많은 모양입니다. 책의 말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체 박물관 아홉 곳의 이름과 위치를 적어놓았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필라델피아를 방문했는데, 그때 일정이 맞지 않아 박물관을 찾아가보지 못해서 아직도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인간의 삶 자체를 하나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첫 번째 이야기를 서너살 때 현존을 깨달았다는 ‘여기 내가 있다’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어서 어렸을 적 걸어서 들판을 가로지르는 첫 번째 여행을 시작으로 다양한 여행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지난해부터 ‘경관기행’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태어난 곳에서부터 성장하면서 살아온 고장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현업에 종사하고 있고, 평소 취미생활인 책읽고 독후감 쓰기, 간간히 책도 써야 하기 때문에 지지부진합니다만, 언젠가는 지금 이야기를 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방랑자들>에 담긴 이야기들을 많이 인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