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이야기
세스 노터봄 지음, 김영중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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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순간 살아온 날들이 거슬러 오르는 방향으로 빠르게 지나가더라고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추락사고로 뇌출혈이 생긴 87세 노인의 임종순간을 찍은 뇌영상이 이를 뒷받침하는 소견을 보였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글 잘 쓰는 문제아라는 별명을 얻었던 네덜란드의 대표작가 세스 노터봄의 소설 <계속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런 일이 나에게도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암스테르담의 고등학교에서 고전어를 가르치는 헤르만 뮈서르트입니다. 소크라테스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동료인 생물학교사 마리아 세인스트라, 국어교사인 아런트 헤르프스트 그리고 이들의 학생인 리사 딘디아와의 사각관계로 엮였다가 해직되어 스트라보라는 필명으로 여행안내서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1,2부로 구성된 <계속되는 이야기>1부는 뮈서르트가 리스본에 있는 한 호텔방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분명 암스테르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리스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아마도 죽음을 맞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가 눈을 뜬 호텔방은 20년전 마리아 세인스트라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장소였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뮈서르트는 당시 마리아와 함께 다녔던 리스본의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20년 전의 사건을 회상합니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 다음 날 아침에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깨어날 것을 기대했지만,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자 여전히 리스본의 호텔이었습니다.


어찌보면 그가 마치 현실인 듯 경험하는 하루는 꿈속에서 겪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죽음의 순간에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2부를 읽다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부에서는 뮈서르트는 리스본의 벨렝을 출발하여 브라질의 벨렝으로 향하는 여객선에 여섯명의 승객과 함께 탑승하고 신비로운 여행을 합니다. 대서양을 항해하는 배는 초시간 상태에 들어섭니다. 동승한 여행자들과 함께 별을 구경하면서 시간과 신화 그리고 문학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여행의 목적이 분명치가 않습니다.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은 같이 여행하는 신비로운 여인으로부터 자신만이 아는 얼굴을 발견할 때까지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사람은 사라지고 마는데 신비로운 여인은 이제 뮈서르트만이 남았다고 신호합니다. 뮈서르트에게 신비로운 여인은 리사 딘디아였습니다.


뮈서르트가 고등학교를 그만두기 전에 했던 마지막 수업의 주제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었습니다. 뮈서르트는 유일하게 자신의 수업을 이해하는 딘디아에게 마음이 쏠렸던 것이지만, 스승과 제자라는 사이를 지키려 했던 것입니다. 다만 남편 헤르프스트가 딘디아와의 관계를 의심한 세인스트라가 뮈서르트를 유혹하여 20년 전에 일탈을 꾀했던 것입니다. 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학교에서는 교사 3명을 해직하면서 뮈서르트와 딘디아의 관계도 끝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이야기>에서는 뮈서르트가 딘디아라고 생각하는 신비로운 여인에게 헤어진 뒤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라는 암시로 끝을 맺습니다. 3부가 있었다면 계속되는 이야기가 무슨 내용인지 알려주게 될까요?


뮈서르트가 리스본에서 갔던 술집의 벽시계는 숫자판이 거꾸로 적혀있습니다. 거울에 비치면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그런 숫자판입니다. 그래서 리스본의 뮈서르트에게는 두 개의 시간이 흐르는 셈입니다. 현재의 시간과 뒤집힌 시간입니다. 현재의 시간이라는 개념은 제어하는 고삐가 없고 측량할 수 없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부여하기 위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반면 뒤집힌 시간은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겹겹이 쌓여온 기억들입니다. 생물교사인 세인스트라는 과학의 시간과 영혼의 시간을 구분하지 못하면 혼란과 혼돈만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순간이 되면 현재의 시간에서 시간의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이라는 것 같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다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합니다. 기왕 그럴거면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 전에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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