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들
앤 카슨 지음, 황유원 옮김 / 난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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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곡을 찌르는 한 줄 문장이 가지는 힘이 대단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 한줄 문장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목에서 무언가 얻을 것이 있겠구나 싶어서 <짧은 이야기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짧은 이야기들을 지은 앤 카슨은 토론토에서 태어나 시인, 수필가, 번역가이자 고전학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생업으로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친다라는 역시 짧은 문장으로 자신을 소개한다고 합니다.


45꼭지의 글의 제목은 모두 ‘~에 대한 짧은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 후기, 마거릿 크리스타코스의 발문, 심지어는 역자까지도 ‘~에 대한 짧은 이야기라는 소제목을 달았습니다. 제목을 훑어보면서 여행, 기차, 독서 등 저의 관심사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흥미를 끌었습니다.


시인은 서문에서 훌륭한 이야기에는 일어나는 모든 일에 원인이 있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끌어왔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별들은 있지만 말들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데, 왜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 같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어보았고, 그게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말해진 모든 것을 받아쓰기 시작했다. 그 흔적들은 점차 자연의 어느 한 순간을 이루어낸다고 했습니다. <짧은 이야기들>은 누군가가 말 한 것들을 받아적은데서 출발한 모양입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짧은 이야기들은 보통 대여섯 줄에 불과합니다. 단 한줄도 채우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가장 긴 글이라고 해도 한쪽을 넘어가는 것은 없었습니다. 정말 짧은 이야기다보니 선문답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짧은 이야기의 경우, “나는 잔해만 남겨진 곳으로 여행을 갔다. 그곳에는 약간 열린 채로 선 대문 세 개와 망가진 울타리가 있었다. 딱히 무언가 특별한 것의 잔해는 아니었다. 한 장소가 그곳에 와서 추락했다. 이후로 그 장소는 잔해만 남겨진 곳으로 남았다. 그 위로 빛이 떨어졌다.(31)”


시인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로마문명이 남긴 유적이 떠오릅니다. 정말 대문 세 개와 망가진 울타리만 남은 유적을 본 것도 같습니다. 어떠면 그곳은 제국 시절에 특별한 장소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위로 빛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존 러스킨이 <건축의 일곱 등불>에서 설파한 바가 떠오릅니다. 유적은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면 된다는 것 말입니다.


왜 어떤 이들은 기차에 마음이 들뜨는지에 대한 짧은 이야기는 더욱 황당합니다. 마침표를 찍지 않은 문장들이 이어지고 있어 어디에서 끊어 읽어야 할지 헷갈립니다. 아무래도 시인에게 이 글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외워두면 좋을 것 같은 수사들을 발견합니다. 예를 들면, ‘많이 사랑받는 기쁨에 대한 짧은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많이 사랑받는 기쁨(le bonheur d’être bien aimée)’이라는 주제는 에스파냐의 극작가 페드로 칼데론 데라 바르카(Pedro Calderón de la Barca)가 한 이 땅의 모든 보물을 다 합해도 사랑받는 기쁨보다 값질 순 없다의 프랑스어 표현을 변형한 것이라고 합니다. 스페인어로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노란 하늘 위대한 노라 하늘을 이해하기 위해서지라고 했다는 반 고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술을 마셔온 것이 이유도 없는 헛일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독서에 대한 짧은 이야기는 아직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로키 산맥에는 저도 가보았습니다만, 문화적 배경 탓일까요?


짧은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긴 이야기는 데이만 박사의 해부학 강의에 대한 짧은 이야기입니다. 저도 아는 그림이라서 시인의 해석이 놀랍기만 했습니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려면 더 깊이 절개해야 합니다, 라고 데이만 박사는 뇌를 머리카락처럼 양쪽으로 가르며 말한다. 그 안에서 슬픔이 주변을 더듬으며 기어나온다.”는 대목입니다. 저도 뇌를 부검하곤 했습니다만, 이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과업은 세상을 위해 비밀스러운 짐을 나르는 것이다라고 한 나의 과업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과업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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