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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과학 - 뇌과학이 말하는 기억의 비밀
찰스 퍼니휴 지음, 장호연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5월
평점 :
기억은 제가 오래 동안 쥐고 있는 화두입니다. 기억력 상실이 주 증상인 치매를 공부하다보니 관심이 생긴 것인데,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끄집어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점은 어렸을 적에는 기억을 참 잘한다고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어느새 옛날 기억들이 가물거리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기억의 과학>은 영국 더럼대학교의 심리학교수 찰스 퍼니휴가 쓴 책입니다. 제목으로 보아서는 기억에 관한 연구들을 집대성한 것으로 보여 읽게 되었습니다. 목차를 보면, 기억의 규칙이라거나 최초의 기억, 기억은 정확한 것인지, 미래의 기억이라는 것이 있는지, 등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1장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이 기억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자신의 경험을 장황하게 늘어놓아 기억에 관한 과학적 진실이라는 기획의도를 살리지 못한 느낌이 남았습니다. 필자 역시 글을 쓸 때 저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편입니다만, 자칫 딱딱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에 윤활유를 치는 정도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구조는 흥미롭습니다. 우선 저자는 ‘길 잃기’라는 방식으로 자전적 기억을 되살려보려 합니다. 예전에 살았던 도시를 찾아 옛 기억을 되살려보려는 시도로부터 기억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기억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흔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인용하는 것처럼 감각이 기억을 되살리는데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살펴봅니다. 개인정보에 대한 보안이 강화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접근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서 접근이 거부되는 상황도 흔히 생깁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기억과 회상에 비유합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기억을 불러낼 때의 단서와 기억할 당시 부호화된 정보를 맞추는 과정.(31쪽)”이라고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이란 것이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 말고도 누군가 전하는 것을 듣고 직접 경험한 것으로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틴 콘웨이는 인간의 기억에는 두 가지 힘이 작용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일어났던 사실에 충실하게 기억을 끌고 가려는 일치의 힘이고, 또 하나는 기억을 현재의 목표,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와 믿음에 모순되지 않도록 만들려는 일관성의 힘입니다. 결국 기억은 개인의 인생관이 반영되어 구성되는, 왜곡된 진실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미래기억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는 말씀을 앞에 드렸습니다. 바로 기억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를 설명하는 7장 ‘미래를 내다보는 기억’입니다. 여기에서는 “기억이 일어난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기 위해 진화한 것.(32쪽)”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자전적 기억과 미래의 사고는 같은 신경체제가 가동되며, 둘 다 일종의 상상력에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1장 ‘할머니의 기억’에서 다루고 있는 노년의 기억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살아온 날들에 대한 기억이 가물거리는 이유와 가물거리는 기억을 분명하게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입니다.
이 책에서는 기억에 관한 과학적 연구의 성과는 그리 많이 반영되지 않아서 기억의 형성과 회상의 기전에 관하여 이해하는데는 큰 도움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기억에 관하여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어 앞으로 읽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