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어 라이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이 책은 김탁환님이 <읽어가겠다>에서 소개한 책입니다. 201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의 마지막 단편집입니다. <디어 라이프>에는 10개의 단편과 표제작인 ‘디어 라이프’를 포함하여 어린 시절의 삶을 돌아보는 네 편의 글을 담았습니다. 김탁환님은 먼로의 단편은 늙은 개구리 같다고 비유하였습니다. 아마도 세상의 3대 불가사의라는 우스갯소리를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럭비공이 튀는 방향, 개구리가 뛰는 방향, 그리고 여인의 마음은 정말 불가사의하다는 것 말입니다. <디어 라이프>에 실린 단편들은 읽는 이가 예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말을 보인다는 것을 개구리와 비유한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내와의 이별을 다룬 영화 <어웨이 프롬 허>의 원작을 쓴 앨리스 먼로는 1931년 생입니다만, <디어 라이프>에 실린 단편들의 시간적 배경은 더 옛날인 것들도 있습니다. <디어 라이프>를 읽게 된 것은 김탁환님이 소개한 ‘일본에 가 닿기를’과 ‘기차’ 등 두 작품이 열차를 매개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읽어보니 두 작품 이외에도 ‘아문센’에서도 기차가 등장합니다. 비중은 크지 않지만 반전의 무대가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차를 몰고 장거리 여행을 다니곤 했습니다. 시골길을 가다보면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화물칸의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열차를 타보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최근에는 캐나다의 태평양쪽에 있는 뱅쿠버에서 대서양쪽의 핼리팩스까지 연결되는 횡단열차을 타보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두 작품을 통하여 캐나다의 횡단열차의 분위기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탁환님은 <디어 라이프>에 실려 있는 이야기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리 같다고 했는데, 역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임에도 남녀 사이의 관계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할 뿐만 아니라 함께 여행하고 있는 딸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도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가 그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가도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그와 같은 판타지는 동면에 빠지듯 하고 일상적인 애정이 변함없이 견고하게 되돌아왔다고 하는데,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습니다. 딸과 함께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 그 남자가 기다리는 것을 발견한 여인은 놀라면서 반가웠던가 봅니다. 작가는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녀는 케이티의 손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바로 그 순간 아이는 그녀에게서 떨어지며 손을 놓았다. 그녀는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다음에 다가올 일을 기다렸다.(41쪽)” 딸아이를 챙기는 일보다 만나고 싶었던 남자와의 관계가 흘러가는 대로 맡기겠다고 생각하는 어머니가 있을까요? 열편의 단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아니라 수 없었습니다.
부자집 외동딸과 혼외관계를 맺고 그녀의 재산을 빼돌리는 유부남의 이야기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가 충격적인 결말을 암시하면서 끝이 납니다. 등장인물들이 20세기 중반 캐나다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해설을 보면, 작가는 단편 ‘자존심’의 마지막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화자의 집 뒷마당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 부분은 “아련하고 쓰라리지만 더 없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더 깊이,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시간의 매정함(혹은 너그러움), 산다는 것의 팍팍함(혹든 소중함), 생존한다는 것의 안쓰러움(혹은 거룩함), 곁에 있는 존재의 체온(혹은 더는 가까워질 수 없는 존재의 체온) 등의 모순적인 것 같으면서도 잘 융화되어 녹아 있다(418-9쪽)”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읽어내지 못했으니 아무래도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 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