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왜 사라졌는가 - 도시 멸망 탐사 르포르타주
애널리 뉴위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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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도 흥망성쇠의 과정을 밟는 것처럼 도시 역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기 때문에 흥망성쇠를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흥청대던 도시도 어느 순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미국의 언론인 애널리 뉴위츠는 그렇게 사라진 도시들 가운데 네 개의 도시를 골라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쇠퇴한 이유를 추론하여 이 책에 담았습니다. 터키의 차탈회윅, 이탈리아의 폼페이, 캄보디아의 앙코르 그리고 미국의 카호키아 등입니다. 네 개의 도시가 쇠퇴한 이유는 제각각입니다. 저자는 연대순에 따라 이들 도시의 흥망성쇠를 추적합니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에 있는 두 개의 낮은 구릉 사이에 묻혀있던 차탈회윅은 대략 9천년 전 신석기 시대에 건설된 마을이었습니다. 수십만 년 동안 유목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농경생활을 시작할 즈음으로 인구규모는 5천명에서 2만 명 정도였습니다. 서기전 6천년 즈음에 이곳 사람들은 마을을 버리고 떠났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심한 가뭄에 사회구조 혹은 도시구조에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고 합니다. 이곳은 신화로 남아 전해졌던 것입니다.


두 번째 도시는 폼페이입니다. 폼페이는 저도 가보았던 곳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서기 79년 마을 북쪽에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분출하면서 쏟아낸 화쇄암이 도시를 덮쳤 순식간에 사라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연재해였던 것인데, 이곳 사람들은 예고하듯 있었던 지진에도 무심하게 일상을 지내다가 갑작스러운 분화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폼페이의 사회적 분위기를 상세하게 전하고 있어서 폼페이 현장에서 보았던 것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폼페이가 화쇄암으로 뒤덮인 뒤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던 것인데, 당시 로마황제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주하여 살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앙코르는 11세기 무렵 크메르 왕조의 수리야바르만1세 치세에 인구가 무려 1백만에 달하는 엄청난 도시였습니다. 톤레삽 호수와 연결된 복잡한 수리체계를 갖추어 번영을 구가하던 앙코르는 15세기 들어 가뭄에 홍수가 엇갈리면서 도시의 수리체계가 무너지면서 도시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왕조는 프놈펜으로 천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앙코르 역시 가보았는데, 그때는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떠났다고 하고,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19세기에 앙코르를 재발견했다는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가 꾸며낸 이야기에 유럽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생긴 오해라고 합니다. 왕조가 프놈펜으로 떠난 뒤에도 앙코르에는 승려들이 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앙코르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도시는 미국의 세인트루이스를 관통하는 미시시피강의 동안에 있는 카호키아입니다.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카오키아는 900년에서 1300년 사이의 전성기에 인구 3만에 이르는 번영을 구가했다고 합니다. 제가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던 것이 1992년이었는데, 그때는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 1982년이었다고 하는데, 과문했던 탓 같습니다. 이곳에는 길이 316m 241m의 정사각형으로 높이 30.5m에 달하는 피라미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규모로 보아 이집트 피라미드나 멕시코 테오티우아칸의 태양의 피라미드를 웃도는 크기라고 합니다. 카오키아는 1450년 무렵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인구과밀과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흩어졌다고 추정됩니다. 이곳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원주민들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자가 <도시는 왜 사라졌는가>를 기획한 것은 이들 도시의 흥망성쇠가 그저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대 인류가 당면해야 할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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