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 High Class Book 42 세상을 움직이는 책 34
토머스 모어 지음, 박병진 옮김 / 육문사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고전독서회에서 <멋진 신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읽었습니다. <멋진 신세계>는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사회를 그려낸 작품으로 꼽힙니다. 디스토피아 사회를 이해하려면 유토피아 사회를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유토피아 사회는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써내면서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플라톤의 <국가>가 유토피아 사상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토마스 모어도 플라톤의 <국가>와 아우구수투스의 <신의 나라>에서 유토피아 사회를 설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토마스 모어는 15세기부터 16세에 걸쳐 활동하였습니다.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이며 문예부흥의 선각자인 에라스무스와 친교를 맺은 것이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쳐 인본주의 사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헨리7세로부터 헨리8세로 넘어가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영국사회는 모든 면에서 무질서했습니다.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착취하였고, 범죄와 음모가 횡행하였습니다.


<유토피아>는 당시 영국의 이런 사회상을 비판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제시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실 모어는 헨리8세의 신임을 받아 외교사절로, 기사로, 대법관으로 임용되었기 때문에 대놓고 국왕의 폭정에 항의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공상적이고 해학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비판했습니다. 요설가(饒舌家)라는 의미를 가진 히들로데우스(Hythlodaeus)를 이야기의 화자로 내세웠습니다. 헨리8세 치하에서 잘 나가던 토마스 모어였지만, 헨리8세가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 재혼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는 헨리8세의 강압에 동의할 수 없었던 토마스 모어는 앤 왕비의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결국 대역죄로 런던탑에 갇혔다가 사형을 당했습니다.


토마스 모어는 프랑스와의 무역과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외교사절로 플란더스에 파견되었던 1515년에 <유토피아>의 제2권을 썼고, 영국으로 돌아온 1516년에 제1권을 썼습니다. 그리고 보니 영화 <스타워스><유토피아>의 글쓰기 방식을 차용한 셈입니다.

<유토피아>의 제1권에서는 불합리한 사회상과 지배계급의 폭정을 다양한 형태로 비판하였습니다. 지배계급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토마스 모어의 애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2권에서는 상상 속의 섬 유토피아에 구현된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상상 속의 섬이란 유럽 대륙에서 떨어진 영국을 의미한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의 제2권에서는 유토피아의 지리적, 경제관, 정치관, 사회관을 비롯하여 철학관, 교육관, 그리고 가정, 전쟁과 종교관을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유토피아가 가장 훌륭한 복지국가라는 점을 설명합니다. 이는 토마스 모어가 살던 16세기 영국이야말로 디스토피아의 대표적인 사회였다는데서 출발하여 이상향을 그려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토피아의 모든 것들이 계획된 바에 따라야 하고,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처벌을 감수해야 하는 어찌 보면 또 다른 형태의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민과 지배계급을 비롯하여 노예까지 있는 형태의 사회이며, 거주 이전의 자유나 여행의 자유가 있는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정해진 직업에 종사해야 하고, 사유재산도 인정되지 않는 듯합니다. 강압적인 규제는 없지만, 사는데 필요한 것은 모두 제공받는 대신 일상적인 삶도 정해진 틀에 따라야 하는 사회가 과연 행복한 사회일까 싶습니다.


플라톤은 철학자가 다스리는 이상적인 국가를 이야기했다면 토마스 모어는 신-처음에는 여러 신을 모시는 사회였지만, 토마스 모어의 방문 이후 기독교를 받아들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종교가 유토피아 사람들의 사고의 틀을 결정하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개성 없이 똑 같은 사회가 과연 유토피아일까 생각해보는 글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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