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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평점 :
지금은 잊었지만, 술에 관하여 수다를 떠는 책에서 인용한 것을 기억하고 읽게 된 책입니다. <중국식 룰렛>은 은희경 작가의 여섯 번째 소설집이라고 합니다. 2008년에 현대문학에 발표한 ‘중국식 룰렛’을 표제작으로 하고, 장미의 왕자(2011), 대용품(2014), 불연속(2014), 별의 동굴(2015), 정화된 방(2016)에 이르는 여섯 작품을 담았습니다. 술, 옷, 신발, 가방, 책과 사진, 그리고 음악 등 우리네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친근한 사물들이 속으로는 낯선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글쓰기였다고 합니다.
‘중국식 룰렛’에서 만난 독특한 술문화가 바로 중국식 룰렛입니다. 룰렛(Roulette)은 작은 바퀴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입니다. 도박의 일종인 룰렛은 번호가 적은 작은 칸들로 둘러싸인 작은 바퀴가 돌아가는 동안 구슬을 던져 넣고, 바퀴가 멈추었을 때 구슬이 들어있는 숫자에 돈을 건 사람들이 돈을 따게 됩니다. 영화 <디어 헌터(1978년)>에서는 러시안 룰렛이라는 섬뜩한 도박이 소개되었습니다. 회전식 연발권총에 하나의 총알만 장전하고 머리에 총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기는 목숨을 건 시합입니다. 그래서인지 뒤에 나오는 중국식 룰렛은 어떤 경기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뒤에 나오는 경기 일수록 위험이 가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국식 룰렛>은 독일이 통일되기 전인 1976년 서독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중국식 룰렛(Chinesisches Roulette)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중국식 룰렛은 일종의 진실게임입니다. 영화를 보지 못해서 진실게임의 실체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은희경의 소설 <중국식 룰렛>에 나오는 진실게임의 룰은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던진 질문을 받은 사람이 답변을 해야 합니다. 대답을 하고는 술을 한잔 마십니다. 단, 거짓말을 하면 게임에서 탈락합니다. 대답을 못하면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
이 시합은 K가 운영하는 바에서 4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K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취급하는 바를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한다고 합니다. 손님이 들어와 앉으면 황금색 위스키가 반쯤 담긴 작은 유리잔 세 개를 날라 옵니다. 손님은 세 개의 잔에 담긴 위스키를 맛을 본 다음에 정한 위스키를 내놓는다고 합니다. 세 개의 잔에 담긴 위스키의 종류는 다양하다고 합니다. 어떤 것은 12년산 스탠다드급이고 어떤 것은 21년산 고급 위스키를 내놓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희귀한 위스키를 내놓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위스키도 종류에 따라서 향과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고급 위스키를 감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위스키를 마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술값은 좋은 술과 평범한 술의 중간 어디쯤인가 봅니다. 같은 값에 좋은 위스키를 마실 수 있으면 행운인 것이고 평범한 위스키를 마시면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좋은 위스키를 감별할 수 없어도 운이 좋으면 좋은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네 명의 관계가 모호합니다. 주인 K와 의사인 화자는 친구 사이인 듯합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날 내놓은 고급 위스크를 주문하는 행운의 주인공이라고는 합니다만,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손에 쥔 행운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불운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네 사람 사이에는 또다른 인연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마무리가 애매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중국식 룰렛>에 담긴 여섯 가지의 이야기들이 닮은 흐름을 따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의 결말이 손에 분명하게 잡히는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읽는 이 나름의 해석에 결말을 맡기는 열린 결말이라는 것일까요? 작가는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하여 꽤나 깊이 취재를 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몰트위스키의 특성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식 룰렛>을 읽은 까닭에 맞추어 독후감도 ‘중국식 룰렛’만 다루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