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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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을 벼른 끝에 읽게 된 책입니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는 서울대학교 병원 암병동에서 근무하시는 종양내과 김범석 교수님이 암환자를 진료하면서 얻은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고인이 된 올리버 색스는 19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던 진료현장에서의 인간미 넘치는 임상체험을 글로 남기는 의사들의 습관이 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서구의 이런 경향과는 달리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진료현장에서의 경험을 전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진단기술의 발전으로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항암제, 방사선 치료, 면역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이 개발되어 암을 완치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수명이 늘고, 암이 완치된 이후에도 치료와 관련하여 혹은 별도로 다른 암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암환자의 삶은 우여곡절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같은 암을 앓는다고 하더라고 환자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암환자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것입니다.


오래 전에 암을 진료하시는 종양내과 교수님의 은퇴를 하고 제가 근무하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오셔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평생 해오던 암환자 진료와는 무관한 일을 해보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위중한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그만큼 부담이 컸던가 봅니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쓴 김범석 교수님 역시 진료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들이 삶과 죽음으로 살아있는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들이었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환자들의 가르침이 버거울 때도 있었다는데, 어떤 죽음들은 자신을 무겁게 짓눌렀고, 어떤 죽음은 몸시 가슴 아프게 했으며, 또 어떤 삶은 자신을 겸허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 나오는 환자들 대부분은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입니다. 세상에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절대로 없는 것처럼 죽음을 맞는 모습들도 참 다양합니다. 저자는 그런 죽음들을 크게 예정된 죽음 앞에서’, ‘그럼에도 산다는 것은’, ‘의사라는 업’, ‘생사의 경계에서, 네 부분으로 나누어 사연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어쩌면 특별한 죽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하나의 죽음일 뿐 특별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미 기억에도 가물거리는 옛날 제가 했던 일이기도 해서 사후뇌기증을 하신 폐암환자의 사연에 눈길을 끌었습니다. 죽은 뒤에 자신의 뇌를 뇌은행에 기증을 하는 일인데, 이는 생전에 미리 기증의사를 밝혀 등록을 하신 분이 돌아가셨을 때 바로 뇌은행에 연락을 해서 뇌를 적출해서 뇌은행에 기탁하는 일입니다. 사회적 부담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 알츠하이머병 등 치매를 일으키는 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방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분들의 뇌와 정상적인 삶을 살다 돌아가신 분들의 뇌가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서울대학병원 같이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에서도 사립병원들과 마찬가지로 박리다매식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입니다. 그런 상황을 외래환자 진료를 시속 15명으로 내달려야 겨우 맞출 수 있는 형편이고, 환자들이 원하는 시속 5명으로 진료를 하는 경우에는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하니,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의료체계임이 틀림없습니다.


읽다보면 이렇게 죽음을 맞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김범석 교수님이 만난 환자들은 분면 반면교사이거나 정면교사였음이 틀림없습니다. 책을 읽고나면 나의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겠다는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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