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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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전작읽기에 도전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쩌면 큰 아이가 히가시노 게이고에 빠져든 이유가 궁금해서인지도 모릅니다. <천공의 벌>676쪽이나 되지만 가벼운 종이를 썼는지 무게감이 그리 부담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쉽게 읽기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일본 사람들의 직업관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이 있습니다. 특히 남자들에 관한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한 우물만 판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분사형으로 적은 이유는 일본의 젊은이들도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 같아서입니다. 어떻든 무언가 일을 정하면 일생을 걸고 한 우물만 파듯한다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천공의 벌>을 보면 한 우물만 파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고민이 읽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자위대로부터 수주한 새로운 헬리콥터를 시운전하는 날 헬리콥터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 유하라 가즈아키와 야마시타는 각각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시운전을 지켜보기로 합니다. 두 사람이 시운전을 준비하는 사이에 두 아이는 격납고에 스며들고 시운전 예정인 헬리콥터에 탑승해보는데, 기업비밀이라고 할 신형헬리콥터의 보안이 이렇게 허술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야마시타의 아들이 헬기 구경에 정신이 팔린 사이 유하라의 아들은 헬기에서 내리는데, 그리고는 헬기가 혼자서 시동을 걸과 격납고를 빠져나가 이륙하고 어디론가 이동합니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누군가 원격조정을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주목받고 있는 자동운전체계가 완성되었나 봅니다. 그렇게 이동한 헬리콥터는 후쿠이현에 있는 신양이라는 중수로 발전소의 상공에 이르러 정지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드러납니다. 전국의 원자력발전소를 폐기하지 않으면 신양 원자력발전소에 헬리콥터를 떨어트려 충동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자칫 단순해질 이야기를 헬기에 어린 아이를 탑승스켜 긴박한 상황을 만들면서, 이 사건이 인류애 차원에서 저질러졌음을-하지만 원자로 폭발이 발전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지구인 모두에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인 구조이기는 합니다-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읽히기도 합니다. 이야기 초반에는 떨어질 헬기에 타고 있는 야마시타 게이타를 어떻게 구출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자위대 구난대의 초인적인 기술과 의지가 결국은 아이를 구출해내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어서 사건을 일으킨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고, 범인을 쫓는 경찰과 범인이 요구한 사항의 처리방법을 둘러싸고 전문가와 행정가들 사이에 의사결정 과정이 다루어집니다. 한편 원자로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발전소 책임자들과 원자로를 건설한 건설사가 협력하여 대응하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이야기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인물이 엄청 많아서 이야기의 흐름을 뒤쫓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에서 범인이 사건을 저지르고 경찰이나 탐정 혹은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물론 범인의 실체와 사건을 통제하는 장소에 접근한 사람은 후쿠이현 경찰 무로부시와 세키네였습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끌고가는 역할은 아니고, 반전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 사건과의 연관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직감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뒤쫓다가 이룬 성과인 것입니다. 사건현장은 지극히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일구어낸 헬리콥터와 원자력발전소인데, 사건을 뒤쫓는 경찰을 여전히 발로 뛰는 모습인 것입니다.


사건을 주도한 사람은 두 명인데 한 사람은 현장을 지키면서 사건을 주도해가지만, 또 다른 한 명은 이야기의 끝에 가서야 정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두 사람이 사건을 일으킨 이유는 여전히 분명치가 않습니다. 다만 범인으로부터 온 마지막 전언, ‘침묵하는 군중이 원자로라는 존재를 잊게 해서는 안된다. 그 존재를 모른 척하게 해서도 안된다. 자신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의미를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길을 선택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구절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작가는 일본의 원전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보다는 안전하지만 원전의 위험을 인식할 필요는 있다는데 방점을 찍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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