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읽고 있습니다. <파묻힌 거인>, <녹턴>, <남아있는 나날>에 이어 네 번째 작품으로 <나를 보내지 마>를 골랐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예상했던 것처럼 생각거리가 많아졌습니다.


주인공은 31세 여성 캐시 H.입니다. 캐시는 간병사로 11년을 근무해오고 있습니다. 간병사는 기증자들을 통제해서 평온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증자들은 무엇을 기증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주인공은 헤일셤이라는 곳을 추억합니다.


자동차를 몰고 시골을 돌아다니게 되면 요즘도 헤일셤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과 마주친다. 안개 자욱한 들판의 모퉁이를 돌거나, 계곡의 경사면으로 내려오다가 멀리서 대저택의 일부가 눈에 띄면, 심지어 산허리에 특이하게 늘어서 있는 포플러 나무들을 볼 때면, ‘아마 저기일거야! 드디어 찾았어! 그러니까 여기가 헤일셤이 있었던 장소라고!’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다음 순간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며 그곳을 지나친다.(17)” 이어서 헤일셤이란 장소는 캐시가 몸담았던 기숙학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루스, 토미 등 친구들과의 기숙학교에서의 생활이 길게 이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평범한 영국 소녀의 성장소설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기숙학교의 분위기와는 다른 묘한 상황이 튀어나옵니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토미에게 루시 선생님은 그렇게 창조적으로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모든 게 아주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미국에 가서 배우가 되고 싶다는 피터에게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 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너희는 비디어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랑도 다른 존재들이다.(118)”이라고 말해줍니다. 반전은 이어집니다. 루시 선생님의 말을 들은 아이들이 그래서 어쨌다는건데? 우리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잖아.’하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헤일셤 기숙학교의 학생들은 다양한 질병으로 장기가 손상된 인간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장기공여를 목적으로 탄생시킨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장과정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하여 학습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운명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서사구조를 읽다보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주제를 따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인간을 위한 장기공여자의 삶을 다룬 영화 <아일랜드>가 있습니다. <아일랜드>에서도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만든 복제인간들을 바깥세상과 격리시켜 생활하도록 합니다. 환경오염으로 멸망한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라고 믿는 이들은 추첨을 통하여 지상에 남아있다는 환상의 섬 아일랜드로 가는 것이 꿈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이들이 장기를 기증하고는 죽음을 맞는 운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링컨 6-에코와 조던 2-델타가 격리시설을 탈출하여 자신들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 대도시로 향한다는 결말입니다.


하지만 <나를 보내지 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운명대로 장기기증을 마치고 삶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인체의 어떤 장기를 기증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4차에 이른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신장, , 등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장기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심장이나 폐처럼 생명유지에 필수인 장기를 제공하고는 삶을 마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면서도 운명을 받아들이는 토미와 캐시의 마음을 생각해보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딘가에 있는, 물살이 정말이지 빠른 강이 줄곧 떠올라. 그 물 속에서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서로 부둥켜안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어. 물살이 너무 강하거든. 그들은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거야. 우리가 바로 그런 것 같아. 부끄러운 일이야, 캐시. 우린 평생 서로 사랑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영원히 함께 있을 순 없어.(386)”


<나를 보내지 마>에서는 다만 남녀가 진정 사랑하는 사이임을 입증되면 장기 기증이 몇 년 유예된다는 헤일셤 시절부터 떠돌던 풍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지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지금은 폐교가 된 헤일셤이 설립된 목적이 드러나는데, 장기기증을 목적으로 탄생시킨 존재들 역시 인간처럼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 존재는 인간과는 별개의 존재라고,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사회적으로 인식하던 것을 바꾸어놓은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는 이야기 중에 미국의 여가수 주디 브릿지워터의 노래제목이기도 합니다. 후렴구에 네버 렛 미 고, , 베이비, 베이비, 네버 렛 미 고.’라는 후렴구가 나온답니다. 케시가 이 노래를 좋아했던 것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운명의 여인에게 아이가 생겼고, 여인은 어떤 일로 아이와 헤어질 두려워하는 심정을 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케시가 노래를 들으면서 춤을 추는 장면을 본 마담은 다르게 해석합니다. 아마도 장기기증의 운명을 타고 난 존재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심정 때문일 듯합니다. “나는 어린 소녀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과거의 세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자기도 잘 알고 있는 과거의 세계를 가슴에 안고 있는 걸 보았어. 그걸 가슴에 안고 그 애는 결코 자기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지그 소녀가 캐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캐시가 장기기증을 시작했는지는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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