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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평점 :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죽는 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어 죽는 일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죽음이기에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은지 가늠이 서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혹은 멋진 죽음을 맞기 위한 준비에 적극적인 사람도 그리 흔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아주 편안한 죽음>을 고른 것은 죽음에 대한 공부의 일환입니다. 1963년 작가의 어머니가 욕실에서 넘어져 대퇴골 목 부분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말기 암이 발견되었고, 그로 인해 장폐색증이 생겨 죽음에 이르는 동안 환자, 가족, 의료진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섬세하고도 담담한 필치로 적어내려 갔습니다. 성장과정에서 부모님과 자매 사이의 관계도 돌이켜보았는데, 아마도 임종에 즈음하여 어머니와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이 아주 편안한 죽음이었다고 작가는 술회했습니다만, 19세기 중반의 프랑스의 병원 풍경과 21세기 초반의 그것은 사뭇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의료진은 물론 가족들 모두 말기암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자에게 감추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는 재수 없게 넘어져 고생하고 있고, 조만간 퇴원하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또 그래야 한다는 집념을 보였습니다.
병원 근무자들은 환자의 존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진료의 편의성만을 중시했던 것 같습니다. “물리 치료사가 침대로 다가와 이불을 걷어 올리고는 엄마의 왼쪽 다리를 붙잡았다. 그러자 잠옷이 벌어지면서 얼떨결에 쭈글쭈글하고 잔주름이 진 복부와 한 오라기의 털도 없는 음부가 드러났다. ‘이제 내가 부끄러워할 건 아무 것도 없잖니.’ 엄마는 당황한 듯 말했다.(25쪽)”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 오래 입원하셨는데, 간병하는 분에게 속살을 보여야 하는 상황을 아주 치욕적으로 생각하셨습니다. 환자중심진료를 내세우고 있는 요즘에는 환자의 존엄성을 지켜드리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관하고 있는 환자경험평가가 시작되면서 그런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환자에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감춘 것도 그렇고, 개복수술을 하는 과정에서도 환자에게는 복막염을 치료하기 위해서 수술한다고 속인 것입니다.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 병명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가 역시 종양으로 소장이 막혔다고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환자에게 행하는 시술의 목적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지 않은 듯합니다. 작가는 주치의인 듯한 N박사에게 ‘왜 관을 삽입하는 겁니까?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면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머니를 괴롭히는 거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매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겁니다.’ 그는 문을 밀치면서 들어가 버렸다. (…) ‘새벽까지만 해도 어머니께서 고작해야 네 시간 정도 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제가 다시 살려 드린 겁니다.’(36-37쪽)”
과연 N박사는 죽어가는 사람을 되살린 것이 맞았을까요?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이 책의 제목대로 작가의 어머니는 아주 편안한 죽음을 맞은 것일까요? 대퇴골 목 부분의 골절을 입어 입원한 병원에서 뒤늦게 발견된 암으로 인한 소장폐색을 꼭 수술해야 했을까요? 수술 후에 수술부위가 아물지 않아서 고통을 받다가 임종을 맞은 것을 보면, 수술 없이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통증관리나 수액요법 등으로 편하게 해드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환자가 ‘비겁하게 나도 모르게 수술을 하다니!(67쪽)’라고 화를 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수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환자 혹은 환자 가족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 수술을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