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평점 :
책을 읽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듯한 광고 문안가 이희인의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에서 소개받은 책입니다. 이희인님이 헝가리를 여행하면서 읽었다고 했습니다. 10여년 전에 부다페스트를 처음 방문했을 적에는 거리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무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5년 전에 놀러갔을 때는 확 바뀐 분위기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19세기말 오스트리아와 연합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당시 유럽의 초강대국의 하나였지만 동맹국측으로 가담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되면서 분할되었습니다. 10세기말 설립된 왕국이 강국으로 올라서기도 했지만, 오스트리아제국과 오스만제국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서면서 국토의 이합집산이 거듭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나치 독일의 압박에 따라 국토회복을 노리고 추축국에 가담하였지만, 역시 패전하였습니다. 종전 시 소련군에 점령되어 공산화되었다가 1989년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헝가리 대중들의 신산한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소개되었습니다만 원래는 『커다란 노트(Le Grand Cahier, 1986)』, 『증거(La Preuve, 1988)』, 『세 가지 거짓말(Le Troisieme Mensonge, 1991)』 등의 제목으로 5년에 걸쳐 각각 발표된 연작 소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이라는 부제로 바꾼 것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어보면 우리말 제목이 이야기의 흐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권의 책을 읽다보면 같은 인물이 등장하고, 새로운 인물이 추가되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야기의 흐름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이야기는 꾸며진 이야기라고 할 것 같은데, 그 점이 분명치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결국 동일한 시간대에서 있었을 수 있는 다양한 사건을 동일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려나갔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 개의 이야기를 무리하게 연결하여 해석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맥락을 놓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상권의 주인공은 쌍둥이 형제인데 이름이 나오지 않고 우리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한 사람은 국경을 넘어가고, 한 사람은 고향에 남게 됩니다. 중권에서는 쌍둥이의 이름이 밝혀지죠. 국경을 넘어간 것은 클라우스이고 고향에 남은 것은 루카스입니다. 루카스가 화자가 되어 고향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펼치는데, 가족관계가 모호해지면서 상권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상상에서 나온 것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하권에서는 헤어졌던 쌍둥이 형제가 만나게 됩니다. 특히 중권의 이야기를 이끌어갔던 루카스가 실종되고, 이번에는 클라우스가 화자가 되는데, 국경을 넘어갔던 사람이 사실은 루카스였다는 설정인데다가, 그렇게 넘어갔던 루카스가 사실은 고향 마을에서 활동하는 듯해서 더 헷갈립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를 그려가면서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권에서는 국경을 넘은 사람이 작성한 조서에 세 가지 거짓말을 적었다고 밝혔습니다. 1.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2. 이 소년은 18세가 아니고, 15세이다. 3. 이름은 클라우스가 아니다. 이 세 가지 거짓말은 작가가 설정한 또 다른 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읽는 이로 하여금 헷갈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마치 상권에 등장하는 형제가 화자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또 다른 나는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와 같은 분열적 구성은 전쟁을 통하여 침략군과 해방군이 교차되는 등 정체성이 분열되는 양상을 나타내고, 하권에 들어서 화자가 다시 ‘나’로 바뀌는 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에 따른 정체성이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전쟁은 싸우는 군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민간인들의 삶을 질곡으로 몰아넣어 살아남기 위해서 별난 짓도 벌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