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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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울송도병원에서 잠시 일하는 동안 암환자들에게 힘이 될 책을 골라 읽고 소개해보려 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서울송도병원은 대장항문질환 전문병원입니다. 특히 암면역치료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암진료는 수술, 항암화학치료, 방사선치료는 물론이고, 면역치료, 영양, 운동, 심리적지지 등 다양한 영역의 협력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은 신장암환우회와 서울 서촌에 있는 일일호일 서점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마음튼튼 독서클럽캠페인의 문을 여는 책입니다. 방송인 허지웅님의 수필집입니다. 우한폐렴 확산위기 상황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신장암 환우들을 정서적으로 지지해주기 위한 독서지원 기획이라고 합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은 악성림프종으로 진단받은 저자가 투병과정에서 얻은 삶의 해석과 현실의 삶에 지친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뜻을 담은 수필집이라는 이유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암치료를 받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저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저는 이 책을 암과 싸우고 있는 환자분들게 소개할 자신이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절망과 분투하기를 포기한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하셨지만, 그 절망을 자전거타기에 비유한 것이 과연 적절한가 싶습니다. 자전거를 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단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면 결코 중심을 잡는 것이 다시 어려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두 번째 이유는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저자는 과연 얼마나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암과 맞서 싸우려는 의지를 가졌는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결국 나는 죽음 이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24)’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제발 거기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을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라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정도의 이유로 고통스럽게 암과 싸우고 있는 환자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책에 실린 글 가운데는 작가의 신산한 삶에 관한 내용도 적지 않은데, 그런 고난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읽어낼 수 없었습니다. ‘나는 솔직히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 재발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지 기다리고 있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환멸이 느껴지고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167)’라고 적었습니다. 그래서 니체를 다시 읽기로 했다는데, 왜 그랬는지도 분명히 와 닿지 않습니다.


책이 중간을 넘어갈 무렵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프기 전과 후의 내가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뭐가 달라졌다는 것인지 조금도 모르겠다. () 나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고, 재발하면 치료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항암은 한 번으로 족하다.(217)”라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팬이라는 분의 요청으로 악성림프종으로 치료 중인 환우를 만나 위로와 격려도 했는데, 우한폐렴 사태와 맞물리면서 치료 일정에 차질이 생겼고,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렇듯 안타까운 죽음에 대하여 그저 ‘(그 분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은 것은 너무 상투적이라는 느낌이 남습니다.


용산철거민에 관한 이야기나, 문학작품, 그리고 수많은 영화를 인용하여 써내려간 글들은 대부분 살아남고 싶은 욕망을 북돋우기보다는 살고 싶다는 희망을 그저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즉 이 책을 기획한 본질과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기보다는 다른 기획으로 한 책에 담겨야 할 내용이 아닐까싶습니다. 물론 작가가 이 책에 담고자 하는 깊은 뜻을 제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릅니다.


흔히 전문가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일반인들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설명해주는 전문가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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