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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 강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겠습니다. 고전이란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언가 남는 책읽기가 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모두 읽지 못했습니다만, <나일 강의 죽음>을 읽게 된 것은 요즘 쓰고 있는 이집트 여행기가 마침 아스완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까닭입니다.
<나일 강의 죽음>은 아스완을 떠난 유람선이 지금은 사라진 나일 강 제2 폭포로 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을 해결하는 푸아로 탐정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강물 위에 떠있는 유람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일종의 밀실살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트의 대표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이스탄불을 떠나 칼레를 향해 달리는 열차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나일 강의 죽음>에서는 ‘1부 영국’편에서 살인 사건의 현장에 나타날 인물들이 소개됩니다. 살인의 동기 가능성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독자 입장에서는 범인을 특정하는데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추리소설의 독후감을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사건의 흐름을 시시콜콜 집거나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밝히는 일을 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3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유람선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살인을 저지르다보니 남의 눈을 완벽하게 따돌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고, 그래서 목격자를 제거하는 연쇄살인이 불가피했던 것 같습니다.(사실 이 내용도 적으면 안되는 것 아닌가 걱정입니다.)
참고로 <나일 강의 죽음>은 1937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그래서 작품의 무대가 되는 아스완을 중심으로 한 나일 강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다릅니다. 하지만 이집트 사회의 달라지지 않은 풍경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푸아로 탐정이 로잘리 오터번과 아스완 시내를 산책하는데 몰려들어 기념품을 소개하는 상인들과 ‘박시시? 박시시? 힘, 힘, 후레이!’라고 떠드는 가난한 아이들을 떼어내는 장면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에르퀼 푸아로는 애매한 몸짓으로 인간 파리 떼를 쫓았다. 로잘리는 몽유병 환자처럼 그들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귀머거리, 소경인 척하는 게 최고예요.’ 그녀가 말했다.(66쪽)” 박시시는 원래 팁을 의미하는 개념이지만 동냥을 하라는 의미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당시 유럽 사회에서 부상하던 급진적인 사고를 가진 청년, 퍼거슨의 고대 이집트의 유물에 대한 시각도 참고할만합니다. “피라미드를 예를 들어 봅시다. 그 쓸모없는 거대한 석조물은 오만한 전제 군주의 이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지어졌지요. 그것을 짓기 위해 고생하고 혹사당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겪었을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면 속이 뒤집힌답니다.(134쪽)” 고대 이집트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가운데 생긴 편견에 빚어낸 생각입니다.
아스완 하부 둑이 1차 완공된 시점은 1912년이고, 아스완 상부 둑은 1960년 착공하여 1970년 완공되었으므로, 1937년에 발표된 <나일 강의 죽음>에서는 아스완 하부 둑을 경계로 하여 유람선이 운행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부 둑 안에 있는 필래 섬을 구경하거나 아스완 상부에 있는 아부심벨 등을 보기 위하여 유람선을 탔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일 강의 죽음>에서 이야기하는 아부심벨의 람세스 신전을 지금의 장소로 옮겨지기 전의 장소에서 구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아스완 상부 둑으로 만들어진 호숫가에 야트막하게 조성한 산자락 아래 람세스2세의 신전을 옮겼지만, 당시에는 높다란 산자락 아래 어디쯤, 지금은 호수 깊은 곳에 잠겨버린 곳에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달라진 고도에서는 동쪽에 뜨는 해가 신전에 드는 것도 과거와는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유물을 옮겨 보존할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원래 신전을 건축하면서 생각했을 모든 것을 완벽하게 되돌려놓을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