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백수린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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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이 새로 번역되어 나왔다고 해서 읽었습니다. 나이 때문인지 <연인>을 읽고 뭘까?’하는 느낌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독후감 제목에도 일탈이라는 단어를 넣었던 것 같습니다.


<여름비>는 더 난해했던 것 같습니다. “, 아버지는 그것을 교외선 기차에서 주워오곤 했다.”라고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책이 꼬투리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파리 13구의 남동쪽 센 강의 서안에 위치한 비트리에 사는 소년 에르네스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러시아에서 이주해온 부모 사이에 태어난 일곱 자녀의 막내아들이고 잔이라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성장소설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의외로 에르네스토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왜냐구요? “학교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걸 가르쳐주니까요.”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에르네스토는 독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읽을 줄만 안다면 많은 책을 읽어서 비교하고 그러는 가운데 진리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자녀가 의무교육을 받지 않으면 부모와 아이까지 감옥에 가는 모양입니다.


어떻든 에르네스토는 학교에 가지 않고서도 독일철학까지 독파하게 됩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방식을 들어보면 여러 학교의 입구까지 가서 교실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학교에서 신의 부재를 배웠다고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수년에 걸쳐 공부할 것을 한번에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일관성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것 같습니다.


<연인>에서도 그랬습니다만, <여름비>에서도 에르네스토와 여동생 잔 사이의 관계를 비롯하여 시베리아의 야간열차에서 만난 남녀 사이에 생기는 관계 등이 꼬집어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일이라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옮긴이는 초기 작품을 제외하면 뒤라스의 작품들은 대체로 심리묘사를 배제한 채, 암시와 반복, 맥락 없는 대화들로 모호하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여름비>에서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간에 희곡 작품처럼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성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흐름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겪도록 합니다.


아마도 제목과 관련한 묘사일 것 같습니다. “비트리에 첫 여름비가 내린 것은 바로 그날 저녁, 어머니가 눈물을 머금은 라 네바를 오래도록 부르는 동안이었다. 비는 시내 전역에, 강과 파괴된 고속도로에, 나무, 오솔길, 아이들이 지나던 비탈길에, 세상의 끝까지 떠돌아다닐 창고 옆의 서글픈 의자들 위에도 오열하는 파도처럼 세차게, 격정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비가 왜 내려야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씻어내기 위하여 쏟아졌던 노아의 홍수를 연상시키는 대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무리 역시 에르네스토와 잔, 그리고 교사가 비트리를 떠나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부모는 비트리를 지키다가 자신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둔 이유도 모호합니다. 옮긴이의 말씀대로 정말 이상한 소설입니다.


그리고 의사로서의 제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대목도 눈에 띄었습니다. 에르네스토의 여동생 잔은 어렸을 때 불에 너무 매료되었다는 이유로 시립 진료소에서 혈액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혈액 속에서 잔이 방화범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혈액검사를 통하여 방화범의 기질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유전자검사를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방화범 유전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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