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역사 - 악마의 잔치, 혹은 죽은 자들의 세계로의 여행에 관하여 우리 시대의 고전 25
카를로 긴즈부르그 지음, 김정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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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잔치, 혹은 죽은 자들의 세계로의 여행에 관하여라는 부제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여행에 관한 책이라면 어떤 종류도 마다하지 않는데, 악마 혹은 죽은 자들의 세계라고 하니 얼마나 유혹적입니까? 특히, “마녀와 주술사들은 밤 시간을 이용해 주로 외진 곳이나 들녘 또는 산에서 모임을 가졌다. 때로는 몸에 기름을 바르고 지팡이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 모임에 참가했다.(11)”라고 시작되는 서론의 머리에서 헤리 포터 연작을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아주 지난한 책읽기였다는 고백을 드립니다. 이 책이 연구의 결과물이었다는 감사의 말을 새겼어야 했습니다.


서론에 나오는 이 책의 얼개를 읽었을 때, 책읽기를 멈추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무언가를 얻은 것이 있었기에 위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를 남겨놓기 위하여 저자가 서론에서 요약한 내용을 옮겨두겠습니다.


나는 이 책의 차례를 연구 대상의 이질적인 특성들에 근거해 정했다. 이 책은 서론과 세 개의 부와 견론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악마의 잔치에 대한 종교재판의 이미지가 어떻게 출현했는지 재구성했고, 2부에서는 심화와 의식의 심오한 층위와 이로부터 악마의 잔치에 활력을 불어넣은 민간신앙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기술했다. 3부에서는 신화와 의식들이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했으며, 결론에서는 지배계층 문화에서 기원하는 요인들과 민속 문화에서 기원하는 요인들 간의 타협에 통해 악마의 잔치라는 확고한 전형이 성립되었음을 밝혔다.(31)”


14세기 프랑스에서는 나병환자, 유대인, 무슬림 들이 우물에 독을 풀어 기독교인들을 몰살시키려는 음모가 있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저 화형에 처해지거나 추방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죄상을 밝혀낸 사람은 교회의 이단심문관이었습니다. 심문기록이 남아있고 피의자들의 혐의가 진술을 통하여 입증되었다고는 하지만, 요즈음처럼 피의자의 권리를 지켜가며 심문이 이루어졌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받고 있는 혐의와 심문관이 정해놓은 절차에 따라 고문이 이루어졌고, 피의자가 진술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 같습니다. 사건의 배경에는 13479월 경 콘스탄티노플을 떠난 제노바의 범선이 이탈리아 남부 메시나 항구에 정박했을 때, 배에서 상륙한 쥐들이 옮겨온 페스트균이 있었습니다. 페스트균이 유럽대륙을 휩쓰는 동안, 살아남은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재앙을 가져온 자들 지목하여 희생양을 삼고자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종교재판은 마녀사냥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미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가 일을 벌린 것입니다. 마녀들은 비밀리에 모여서 동물로 변신하거나, 인육을 먹거나, 빗자루나 동물을 타고 날아다니는 것을 목격한 누군가의 고발에 따라서 종교재판을 받고 유죄로 판정이 나면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사실 암암리에 포교를 하던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부터 우상숭배의 금지 등을 이유로 이교를 배척했다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공인 전까지는 이교에 반대하다가 순교를 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때까지는 다신교나 민간 신앙이 주류 종교였고 기독교가 이교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던 것이 상황이 바뀌었던 것입니다.


마술사나 마녀의 활동은 민간 신앙 혹은 당시 만해도 중요했던 농업 생산을 축원하기 위한 대중적인 행사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자들은 이런 풍습이 동쪽에서 전해진 것으로 파악합니다. 그 뿌리를 중앙아시아를 넘어 시베리아까지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마술사나 마녀가 동물로 변신할 수 있다는 허황한 믿음도 민간의 풍습이나 신앙에서 행하는 행사를 위하여 변장한 것을 오해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서지학적, 민속지학적인 연구의 결과입니다. 결론 부분에 이르면 저자가 다룬 악마의 잔치라는 이미지는 이단 심문관이나 세속 재판관들이 만들어낸 것(적대적인 사회집단이나 무리가 꾸민 음모)과 이미 민속 문화로 오랫동안 전해오던 샤머니즘 문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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