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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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창작소설을 골라 읽은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견작가인 손보미님의 <작은 동네>를 골라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삶을 모두 지운 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면 학창시절 대학동아리에서 가을공연으로 올렸던 쏜톤 와일드의 <우리 읍네>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화자에 대하여 별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습니다. 화자는 서른일곱 난 회사원으로 연예기획사에서 10여 년간 일 해왔고, 화자는 전공이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강사로 출강하는 모양입니다. 화자와 남편 사이에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 사이사이에 화자는 열 살 무렵 경기도 광주에서 살면서 겪었던 일들을 회상합니다. 화자는 그 작은 동네에서 열한 살 때까지 살다가 떠났는데, 그 후로 아버지가 가족을 떠나는 바람에 홀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다고 합니다.


광주에서 자라던 시기에 화자는 특히 어머니의 과보호를 받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외활동 등에 대하여 지나친 간섭에 대한 불만이 가출소동으로 이어지고, 화자의 가출소동은 어머니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면서 부모님 사이의 갈등으로 확장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은 화자의 출생에 관한 비밀이 밝혀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화자의 어머니는 전남의 어느 섬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의 언제쯤 오징어잡이 배를 탔던 아버지가 북방한계선을 넘는 바람에 북한에 압류되었다가 돌아오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건은 연루된 사람들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의 삶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학급에서 따돌림을 받는 친구를 가까이 끌어들이려 노력하는 모습 등, 화자는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에 이미 나름대로 주관이 뚜렷했던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과거의 삶을 모두 지운 채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질문은 화자의 것이 아니라 화자의 어머니의 것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화자가 여동생의 자식이었다는 것이 마지막에 밝혀지고 나서야 화자의 어머니의 행동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는데 있어서 출생과 관련된 비밀을 언제까지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왜곡된 기억으로 인하여 삶이 뒤틀릴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화자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생각이나 입장을 제대로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도 불행한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할 무렵 화자는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나 자신이 기여한 바가 있는 듯하여 죄책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나는 그저 너가 행복하기만을 바란단다라는 말로 퉁치고 말았습니다. 이 한 마디에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야기해준 오빠의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기억은 전혀 달랐던 것을 보면 화자의 출생에 관한 많은 사실들이 가족 간에 제대로 공유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이혼도 화자의 친부가 간첩혐의를 받고 복역한 것과 무관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화자의 가출사건이 계기가 되어 알게 된 여성이 자살을 하고 그 일로 경찰이 쫓아다닌 것 때문에 아버지가 겁을 먹었던 모양입니다.


화자의 전공이 무언지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강의 중에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외국의 산불, 어린아이 납치사건, 전염병, 노인들의 집단자살, 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난 강진 등, 어떻게 보면 부정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작용과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화자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분 같아 보입니다. 저도 꽤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만, 이런 종류의 사건으로 강의실의 분위기를 바꾸어보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입니다만, 과거에는 간첩으로 몰리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에 화자의 어머니는 조카를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월북 이야기를 읽다보니 최근에 벌어진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해역에서 사살되고 소각되는 경천동지할 사건이 떠오릅니다. 사건 후 남북한 당국이 상황을 정리하는데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넘치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간첩으로 몰리는 것이 아니라 월북자로 몰리는 세상이 된 것은 아닐까 싶어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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