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픈 경계선 - 사람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그어지는
아포 지음, 김새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여행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연관이 있어 보이는 책들에 눈이 가는 경향입니다. 제목에서 보는 ‘경계선’은 국경을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국경이 있어서 슬픈 사연이 있나보다 싶었습니다. <슬픈 경계선>을 쓴 분은 타이완 출신 작가입니다. 대학에서 언론학과 인류학을 전공하고 기자와 NGO활동가를 거쳐 지금은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가가 인류학을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작가로 활동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지역에서 겪은 다양한 상황들을 통하여 경계로 인하여 생기는 정체성을 천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직접 방문하여 겪은 일이지만, 북한의 경우만큼은 남한을 방문한 것으로 가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경우는 지금은 일본의 영토로 되어 있는 오키나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읽다보면 한국을 제외하고는 현지의 중국인, 즉 화교들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중국인들이 본토를 떠난 시기와 사연은 제각각인 듯합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설 때부터 국공내전 끝에 국민당쪽 사람들이 본토를 탈출한 것까지가 중국 본토 안에서 일어난 갈등으로 인하여 떠난 중국인들이 결국은 살고 있는 나라에서도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모양입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중국이 내세운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에 따라 늘리고 있는 투자에 따라 다양한 중국인들이 몰려 사업기회를 찾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중국인들은 현지에서 살고 있는 화교들과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타이완 주변국가들을 책 속으로 끌어와 이곳 섬나라 한복판에 놓은 다음, 나란히 저울에 올려 직접 비교하며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느껴볼 수 있길 바랐다(12쪽)”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낯선 곳이나 낯선 사람과 마주했을 때 그저 하나의 시선이나 역사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에 고민하고, 누군가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기보다는 직접 다가가 직접 보고 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기를 기대한다(16쪽)”라고 하였습니다. 인류학자가 되어 보라는 주문 같습니다.
모두 3부로 구성된 책의 내용은 1부 모호한 경계선에서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태국과 미얀마,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들에서 화교들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가 불편한 나라에서는 타이완 사람들도 중국인으로 오해를 받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2부 시간과 기억의 경계선에서는 오키나와, 대한민국, 중국 조선족 자치구, 베트남, 보르네오 등의 나라에서 역사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굳어진 경계로 인하여 받고 있는 고통을 다루었습니다. 한국의 경우가 유일하게 화교의 정체성을 다루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중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남북한이 통일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을뿐더러 혹여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북한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있더라고 하는데 놀랐습니다.
3부 경계에 서있는 정체성에서는 홍콩, 마카오,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등지에서의 화교들의 정체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최근에 홍콩을 중국 본토의 체제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정부의 시도에 반발하는 홍콩사람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이 2010년에 처음 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의 홍콩사태가 빠질 수도 있겠다 싶지만, 금년 6월에 개정판을 내면서도 심도있게 다루지 않은 이유는 분명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홍콩 사람들의 정체성 구현을 위한 발버둥을 이해해야 하지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월남전에 참전한 것을 계기로 경제적 도약을 이룩했고, 일본 역시 한국전을 계기로 전후복구에 성공하였던 것처럼, 타이완 역시 한국전을 계기로 본토로부터의 안보와 경계부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고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