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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신경립 옮김 / 창해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한폐렴 사태 덕분에 큰 아이의 책읽기 취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전작읽기에 가까워지는 것도 큰 아이 덕분입니다. <동급생>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1993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그는 1985년에 <방과후>로 등단했는데, 학원을 무대로 한 작품으로는 <동급생>이 등단작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합니다.
추리소설을 읽은 감상을 적는 일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얼개를 넣으면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이야기의 얼개를 빼고 적으면 꼭 소가 없는 찐빵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동급생>은 추리소설인 동시에 고등학교 3학년 남녀학생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성장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교나 학생들의 분위기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사이에 일본의 학교의 분위기나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이 발표된 지도 어언 30년이 되어가는 데, 오래 전에 학교를 다닌 제 느낌으로는 30년 전의 일본 학원 분위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연쇄살인을 다루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급생>에서도 3건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죽음은 고3인 여학생인데 주인공 남학생이 죽음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죽음이 있기 전애는 몰랐지만 우연히 가진 관계로 인하여 임신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녀의 임신을 둘러싸고 학생지도를 맡고 있는 선생님들이 개입을 하고, 결국 사고로 이어진 것입니다.
한 여학생이 사고로 인하여 죽음을 맞았다는 것으로 사건이 종료되었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남학생은 원인을 제공한 자신의 책임을 피하지 않고 죽은 여학생의 부모에게 진솔한 사과를 드리고, 사건이 자신 때문에 일어났음을 밝혔습니다. 이런 학생을 요즘 보기 드문 OO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에는 ‘모름지기 매사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에 옮길 때는 주저하지 말며, 자신이 행한 바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학생이 여학생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관계를 가졌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결정한 행동이었는데, 여학생은 남학생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응한 것 같습니다. 남녀관계는 양쪽의 생각이 일치하여 행동이 결정되더라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도 있는 것입니다만, 일방의 생각으로 일이 벌어질 때는 좋은 결말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친구가 불행한 일을 당한 것을 보고는 그 책임을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주인공 남학생의 생각이 기특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죽음은 자살인 듯 타살인 듯 모호합니다. 사실 추리는 이 사건부터 시작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죽음은 두 번째 죽음에 관련된 선생님 죽음인데, 첫 번째 죽음에도 연관이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세 건의 죽음은 주인공 남학생의 연애사에서 출발하는 셈입니다. 남녀학생의 사랑에 부모의 생각이 개입되어 깨지는 경우도 있는 모양입니다. 30년 전에는 그랬을까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품인 까닭인지 탐정 가이스케, 갈릴레오 유가와 교수 등처럼 사건 해결을 주도하는 인물이 없고, 등장인물 특히 혐의를 받는 사람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건해결의 주체는 경시청의 형사들이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사건처럼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가리기 위하여 증거를 모으고 상황을 재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추리소설을 기본을 따라가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초보자이다보니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과정이 더디거나 형사의 조사를 보조하는 역할 정도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학원물은 유독 운동부와 관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작가가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