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유한성의 철학
오도 마르크바르트 지음, 조창오 옮김 / 그린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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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거리가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래서인지 나이 듦, 늙어감 등에 관한 책에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오도 마르크바르트의 <늙어감에 대하여>도 그래서 골랐던 것인데, 읽어가면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건너뛴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특히 인간의 오류 가능성, 우연성, 유한성에 대한 깊이 있는 저작을 발표해왔다고 합니다.

현대에 들어 특히 과학적-기술적 문명의 발전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만, 저자는 의학, 기술, 경제 영역에서의 문화적 성과를 부정적인 것으로 유죄판단하기보다는 축복이라고 찬미하는 철학자라고 합니다. 우려할 바는 있으나 발전으로 인해 누리는 생활을 편리함을 폄하할 것까지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늙어감에 대하여>에서는 ‘유한성의 철학’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처럼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점을 잊고 사는 우리를 일깨우기 위하여 쓴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죽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죽음이라는 존재가 눈앞에 가까워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85세 생일에 맞추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을 것입니다.

프란츠 요제프 베츠는 ‘도대체 왜 생일이 축하되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생일축하는 사실상 죽음과 연관이 있는데, 언젠가 죽을 그날을 피해 왔다는 것을 상정하여 축하하는 것이라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죽음을 맞더라도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이라는 진실을 감추기 위하여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유한한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1. 우연을 인정하고, 2. 시민성 거부를 수용하지 않으며, 3. 시가니 유한하다는 것, 4. 그렇다고 해서 우울할 이유는 없으니 ‘그래야만 해’보다는 ‘그렇지’하는 입장을 견지할 것, 5.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시기에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늙음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단순히 삶의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에 우아하게 늙어가기를 목표로 삼은 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책읽기였던 셈입니다. 어느 시점까지는 젊어서 세웠던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꾸준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겠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지나온 날들을 정리하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아하게 늙어가는 일인 듯합니다.

특히 ‘시민성 거부의 거부’라는 소제목은 ‘1945년에 대한 한 철학자의 비평’이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이 되던 5월 8일에 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날 저자는 소련의 포로수용소를 탈출하여 미군의 포로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자신이 겪어온 과정에 대한 기억과 반성을 정리하였습니다. 저자는 1940년 4월부터 1945년 3월 초반까지 아돌프-히틀러-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1937년 시작된 이 학교는 처음에는 10개로 시작하여 12개의 시설이 있었고, 2,500~3,000명의 학생이 졸업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나이에 따른 히틀러 소년단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시민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나치-이상론자를 위한 혁명적 교육이 이루어져졌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에 대하여 저자는 “전체주의적인 이상론자는 소위 더 상위의 것을 위해 ‘강인함’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 반하여 모든 것을 희생할 중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 그의 개별성, 그의 시민적 감수성, 그의 인간성과 도덕 모두가 희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36쪽)”라고 적었습니다. 시민성을 거부한 나치교육의 목적이었습니다. 전후 서독에서 활동한 적지 않은 명망가들이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저자는 시민성 거부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마르크바르트와 서문을 썼던 베츠의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담의 중간에 나오는 ‘늙은 저는 더 이상 특별히 희망을 가지고 싶지도 않고 미래에 열려 있지도 않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은데 왜냐하면 나에겐 더 이상 남은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진 미래에 자신의 기대를 맞출 때 늙은이의 영리함이 드러나게 됩니다.(103쪽)“라는 부분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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