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뉴노멀 - 대전환의 시대, 새로운 표준에 대한 인문학적 사고 ㅣ 퇴근길 인문학 수업
김경미 외 지음, 백상경제연구원 엮음 / 한빛비즈 / 2020년 6월
평점 :
‘인생을 바꾸는 매일의 작은 발걸음’이라는 소박한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 <퇴근길 인문학 수업>은 독특함이 돋보이는 기획입니다. 일정한 주제와 관련된 글을 매일 5~9쪽씩 읽을 수 있도록 이어가는 형식은 드물지 않습니다만, 열두 꼭지의 작은 주제들은 큰 주제의 범주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세 개의 큰 주제를 묶어 시즌제로 연결하고 있는 점도 독특합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즌 1은 ‘멈춤’, ‘전환’, ‘전진’ 등을 큰 주제로 삼았고, 시즌2는 ‘관계’, ‘연결’, ‘뉴노멀’ 등 세 개의 주제어로 구성하였습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이 개설될 때의 큰 주제 ‘멈춤’은 우선 신선하였습니다.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시즌2를 마무리하는 주제어 ‘뉴노멀’은 지금까지 두 글자였던 큰 주제어를 세 글자로 바뀌었다는 점부터 새롭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말이 아니라는 점 역시 새롭다 할 것이나, ‘좋은 우리말을 골라보았더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경우는 가급적이면 외래어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이라는 기획이 고유명사처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고는 있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시즌’, ‘뉴노멀’이라는 외래어를 쓰면서도 불편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뉴노멀>은 금년 초 세계를 강타한 우한폐렴의 영향을 고려한 점이 있는 듯합니다. ‘(이 질환이) 세계를 휩쓸면서 경제를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 사람과의 관계와 소통도 비대면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전례 없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뉴노멀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라고 한 서문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가 주로 사람들을 만나 공동의 관심사에 대하여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라서 우한폐렴 사태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대면회의를 서면심의나 화상회의로 대체하고 있습니다만 사안에 대하여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한폐렴의 사태를 일찍 종식시키고 원래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새로운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우한폐렴이 종식된 뒤에 옛날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우한폐렴에 대처하기 위하여 도입한 새로운 방식이 그대로 굳어질 것인가는 지금 고민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뉴노멀>은 ‘기술과 행복’, ‘우리의 삶’, ‘생각의 전환’을 중간 제목으로 정하고 각각 네 꼭지의 세부 주제로 강의를 구성하였습니다. 이번 기획에 참여한 필진은 저에게는 생소한 느낌이 있습니다. 생소하다는 느낌은 곧 새로운 시각을 가진 분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뉴노멀이라는 큰 주제어에 맞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 할 디지털기술을 바탕으로 한 ‘초연결’이 중요한 화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미래를 고민하는 자체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에 충실한 것으로 미래를 준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주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백년 미만의 짧은 인생을 굳이 주류에 편승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퇴근길 인문학 수업>에 실린 강의들을 읽으면서 나름 생각거리를 찾아내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뉴노멀>에서도 많은 생각거리들이 있었지만 한문학자 안나미교수의 첫 강의 ‘중국 명산 탐방으로 시간을 넘다’에서는 제가 하고 있는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찾아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누구나 중국에 가보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부여된 업무를 수행하는 이외에도 중국의 문물을 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명산 탐방으로 시간을 넘다’에서는 1712년 북경에 다녀온 김창업이 남긴 연행일기를 중심으로 그보다 100년 앞선 1616년에 북경 인근의 명산, 각산, 여산, 천산을 처음 오른 이정귀의 <삼산유기>, 김창업보다 100년 뒤인 1833년에 여산에 오른 김경선이 <연원직기> 등 세 편의 여산 기행문을 비교하였습니다.
안나미교수는 100년씩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여산이라는 같은 장소를 방문한 세 조선의 선비들은 어떤 느낌을 얻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결론은 ‘조선의 선비들은 앞 세대가 남긴 기록을 가지고 답사하며 선배와 공감하려고 노력했다’로 정리합니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공감’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