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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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이야기는 집중해서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시간여행은 드마마나 소설에서 자주 만나는 환상적인 요소인데, 뮈소 역시 즐겨 사용하는 편입니다. 환상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경우는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의 이야기라면 시간여행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때는 특히 마무리가 잘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은 시간여행인 듯 시작하였지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맥락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여행은 <시간여행자의 아내>에서처럼 등장인물의 신체적 특성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영화 <백 투더 퓨터>에 등장하는 자동차처럼 특별한 조건을 갖춘 물건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웜홀처럼 특정한 장소에서 시간이동이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서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케이프코드에 있는 오래된 등대의 지하실에 있는 방에서 시간여행을 시작합니다. 그 방에서 시간여행이 시작될 뿐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불특정의 시간대와 장소로 시간여행을 떠나야 하는 변화가 생긴다는 설정입니다. 주인공이 현시간대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 정도, 즉 하루인데,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은 1년을 기준으로 길수도, 짧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가 지나면 현실에서 1년이 자나는 셈입니다. 그 1년 동안 시간여행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코드곶에 있는 등대의 이름은 ‘24방위 바람의 등대’입니다. 지형적 특성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변화무쌍한데서 붙인 이름 같습니다. 바람의 방향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경우에 저는 동서남북풍이라고 부릅니다만, 뮈소는 바람의 방향을 더 세밀하게 구분한 것 같습니다. ‘24방위 바람의 등대’ 지하에 있는 시간여행이 시작되는 방에 있는 풍향도에는 라틴어 경구가 써있다고 했습니다. “postquam viginti quattuor venti flaverint, nihil jam erit.” ‘24방위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으리라.’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야기의 초반에 주인공의 조부가 등대에서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다는데, 사실은 조부에게 등대의 소유권을 판 사람 역시 사라졌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매사추세츠의 코드 곳에 있는 등대의 지하에 있는 방에서 시간여행을 떠난 주인공, 아서 코스텔로는 처음 뉴욕으로 시간과 공간이동을 하게 됩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성 패트릭 대성당이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여행에서 도착한 장소는 줄리아드 학생인 엘리자벳 에임스가 목욕을 하고 있는 욕실이었습니다. 결국 이야기는 엘리자벳 에임스와 시간여행자 아서 코스텔로가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을 그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얻은 두 아이가 교통사고로 숨진 비극적 사고로 인하여 생긴 갈등을 풀어가기 위한 과정을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것입니다. 사고 이후 엘리자벳과 아서는 각각 자살을 시도하는 등 불안증세를 보였지만, 결국은 이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시간여행은 스물네 번 반복되는 것으로 설정되었고, 스물네 번의 시간여행이 끝나면 시간여행을 통해서 겪은 모든 일이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24방위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으리라.’라는 주문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아서의 마지막 시간여행이 끝난 다음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않은 미완성의 이야기로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서가 쓴 시간여행의 이야기의 끝은 시간여행에 묶여있는 운명적인 결말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고,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라는 아서의 이야기는 어쩌면 뮈소의 철학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뮈소의 다른 소설 <내일: https://blog.naver.com/neuro412/221913977617>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사는 사람과 컴퓨터를 통해서 교신하게 된 주인공이 비극적 사고를 막으려는, 즉 운명을 바꾸어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344쪽

2015년 12월 01일

밝은세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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