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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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의 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입니다. 책을 고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얄팍한 책 두께도 한 몫을 한 듯하고, 책표지에 담은 사진이 눈을 끈 것 같기도 합니다. 침대, 내복차림의 여성, 창밖을 지켜보는 모습 등이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는 것이 한 몫을 한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이유는 희곡 <관객모독>을 쓴 작가라는 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대학에 다니던 1977년에 연극이 초연되었는데, 파격적이라는 점에서 꽤나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읽는 동안은 물론 감상을 정리하는 지금도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합니다. 이야기는 제목처럼 ‘짧은 편지’와 ‘긴 이별’이라는 작은 제목의 글로 구성되었습니다. 시대적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어느 시점일 듯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작가인 화자가 미국을 방문했는데, 방문 목적은 분명치 않습니다. 옮긴이는 사라진 아내를 뒤쫓고 있다고 합니다만, 화자의 아내 유디트는 화자보다 나흘 먼저 미국에 도착한 것은 맞지만, ‘그녀가 무슨 돈이 있어서 여행을 떠났지?’하는 의문을 품은 것이나, 그런 아내의 흔적을 뒤쫓는데 몰입하는 것 같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려는 것인지 금세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옮긴이는 ‘한 인간의 내적 성장을 기록한 발전소설’로 해석합니다. 서두에 등장하는 유디트의 짧은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11쪽)” 주인공은 유디트가 묵었다는 뉴욕의 호텔로 향하기는 합니다만,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도착한 보스톤에서의 행적을 보면 딱히 유디트를 찾아나선 미국방문이라는 느낌이 와닿지 않습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받은 압박감이 불안을 조성하는 느낌, 그런가하면 초면인 사람들과 노름에 휩쓸리기도 하는, 종잡을 수 없는 행태를 보입니다.

뉴욕에 도착해서는 아내가 남겼다는 카메라를 찾고서는 생뚱맞게도 3년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만나 잠자리를 같이한 클레어 매디슨이라는 여자를 찾아 필라델피아 인근의 피닉스빌을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그녀가 딸과 함께 간다는 세인트루이스까지 동행합니다. 그들과의 여행을 보면 적극적으로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매디슨의 딸 베네딕틴을 돌보는 일이 중심이 되는 느낌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내 유디트와의 관계가 어땠는지 살짝 보여줍니다. ‘유디트와 나는 지난 반년 동안 깊은 증오심으로 무미건조한 생활을 해왔다.(86쪽)’ 매디슨을 만난 이유가 누군가 여자와 함께 있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아내를 뒤쫓을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 듯합니다. 이야기의 말미에는 드디어 만난 아내 유디트가 화자에게 권총을 겨누고 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그녀의 짧은 편지의 내용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아내가 쏜 총에 맞는 순간 이야기는 존 포드 감독과의 조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보면 유디트와의 만남이 현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야기의 전반에 걸쳐 언급되는 카를 필리프 모리츠의 <안톤 라이저>와 고트프리트 켈러의 <녹색의 하인리히>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와 계보를 같이 하는 성장소설이라는 점을 보면 페터 한스케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에서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개인의 성장과정인 듯합니다. 아내 유디트와의 관계를 청산한다는 것, 그리고 살아온 오스트리아를 떠나 미국이라는 생소한 장소를 여행한다는 것은 과거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 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고 불안이 고조되는 것은 자아와 타자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이 책에서 언급한 카를 필리프 모리츠의 <안톤 라이저>와 고트프리트 켈러의 <녹색의 하인리히>를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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