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리커버 특별판)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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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독서동아리 독심회(讀心會)에서 이달에 읽은 책입니다.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책읽기가 다양해지는 것 같습니다. 2009년에 발표된 정유정작가님의 <내 심장을 쏴라>는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품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하게 되는 두 젊은이의 탈출기입니다. 정신과 폐쇄병동은 누구든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작가는 간호사출신이고, 간호대학에 다닐 때 정신병원에 실습을 나갔던 것이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정유정 작가님께서는 독심회(讀心會)가 속한 심평원 출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고른 것은 아닙니다만 이 책을 제안하고 발표해주신 분 역시 간호사 출신이고 정신병원에 갇힌 두 젊은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정신과 폐쇄병동은 들여다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궁금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야기는 강원도 어디쯤 수리산 자락에 있는 수리 희망병원을 무대로 전개됩니다. 안양에 있는 수리산이 강원도 어디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에 갇힌 두 젊은이 수명과 승민이 폐쇄병동에 갇힌 이유가 과연 정신병 때문인가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환자가 원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자발입원이 늘고 있기는 합니다만, 보호자에 의하여 입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호자가 돌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키다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입원을 악용하는 사례가 없지도 않았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신병동에서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213)라는 주인공 수명의 이야기도 나오는가 봅니다.

이야기를 보면 수리 희망병원에서 정신질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나 보호사들이 환자들을 강압적으로 통제하고 격리실에 가두는 일을 빈번하게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신질환자가 구타를 당하고 숨진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정신병원 안에서의 폭력이 근절된 것은 아닌가 봅니다. 제가 일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의료행위들이 의학적으로 적절하고 환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는가 등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병원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는데, 이 소설의 무대인 수리 희망병원 같은 곳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수명이 정신병원심판위원회에 출석하여 심리를 받으면서 수리 희망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수명이 정신병원에 처음 갇히게 된 것은 낯선 동네에서 모르는 여성을 쫓아가다가 성폭력 미수로 경찰에 체포된 사건 때문인데, 위원회에서 처음 밝히는 그 사건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습니다. 저는 몇 시간째 거리를 헤매고 있었죠. 피곤하고 흠뻑 젖은 데다, , 불안해서..... () 저는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7-8)” 그런데 경찰을 비롯한 세상 사람들은 그 설명을 들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장면을 비롯하여 수리 희망병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미쳤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조리가 없고 허황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절실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폐쇄병동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협력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서슴없이 도와주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가 승민이 아파서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서로 도와 승민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폐쇄병동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3자적 시각에서 그려낸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서 같이 움직이며 그들의 시각에서 기록해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되었거나 수명은 여러 정신병원을 전전하고 심지어는 공주 치료감호소를 다녀온 끝에 조현병을 치료하고 퇴원하는 좋은 결말을 맺게 되었습니다. 사실 조현병도 처음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적적한 치료를 일관되게 받으면 완치되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데, 초기 치료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치료가 어려운 만성 조현병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합니다. 수명이 정신병원에 갇히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수명의 입원 중 죽음을 맞음으로써 수명과 아버지 사이에 얽혔던 여러 상황에 대하여 서로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점이 아쉬웠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와 얽힌 사연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합니다.

이 책을 발표하신 분이 감명 깊었다고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하늘도, 숲도, 수리호도 온통 먹빛이었다. 땅거미의 먹빛은 동트기 전의 먹빛과 의미가 다르다. 불안을 부르는 빛이었다. 충동을 깨우는 빛이었다. 머리를 낮추고 포복해오는 광기의 그림자였다. 크고 작은 사고, 폭력과 자살 소동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간이 바로 땅거미가 내릴 무렵이었다. (136)” 작가가 얼마나 세밀하게 사물을 관찰하고 서술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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