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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엘리 위젤.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평점 :
유대인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폴란드의 오시비엥침(독일어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본 나치의 만행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만, 마이애미에서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볼 때와, 예루살렘에서 홀로코스트 기념관, 야드 바셈(Yad Vashem)을 참관할 때의 느낌이 같지않더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각을 이루며 사는 모습이 마음 한 구석에 꺼림칙하게 걸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긴 글들을 읽으면서도 다양한 생각이 들었던 것은 홀로코스트 과정에서 보인 유대인들의 다양한 모습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나의 기억을 보라>는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16세의 나이에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되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엘리에저 “엘리” 위젤(Eliezer “Elie” Wiesel)의 교육철학에 관한 내용입니다.
엘리 위젤은 종전 후에 프랑스의 고아원에 보내졌고, 1948년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프랑스 신문 <라르슈>의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195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수아 모리아크로부터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글로 써볼 것을 권유를 받고 <밤>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써서 주목받기에 이르렀습니다. 1955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여 1963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나치의 수용소에서 경험한 바를 토대로 폭력과, 억압, 인종차별 등을 바로 잡기 위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겪을 것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치에 부역한 유대인은 부역한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나치로부터 끔찍한 탄압을 받은 사람들은 기억조차 되살리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 위젤은 폭력적 인종차별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증언해서 공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지 않고 침묵의 심연에 관련된 사실들을 감추어두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기억을 보라>는 엘리 위젤의 제자, 아리엘 버거의 저작입니다. 15살 때 엘리 위젤을 만났던 아리엘 버거는 전통 유대교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와 예술가적 기질이 있어 전통에 매이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입장의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을 빚던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합니다만, 에리 위젤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대 시절에는 위젤의 학생으로, 30대에는 위젤의 조교로, 대학원을 마치고도 위젤과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그의 철학을 고스란히 이어받을 수 있었는데, 25년동안 이어진 만남과 5년 동안의 강의 필기, 같이 강의를 듣던 학생들과의 면담기록 등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위젤의 교육철학, 방법론, 유대경전의 새로운 해석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위젤교수의 가르침에 따라 저자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해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고백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단원별 제목이 기억-다름-믿음과 불신-광기와 반항-행동주의-말고 글을 넘어서-목격자로 이어지는 것은 유대인들이 살아온 나날들에서 얻는 삶의 의문부호에 대하여 답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위젤교수는 유대교의 다양한 교리서를 비롯하여 근현대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장면을 교재로 하여 수업에 참여하는 다양한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모두어 스스로 결론을 맺도록 하는 수업방식을 채택하는데, 정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젤교수는) 이 세상을 광기로부터 구해내려면 교육이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으로 타락을 이겨내도록 해주는 숨겨진 요소를 찾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이 요소는 결국 지식은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될 것이고, 그 지식이 쌓여 증오가 아닌 공감과 동정의 행위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젤교수가 찾아낸 숨겨진 요소는 바로 기억이었다고 합니다(37-38쪽).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합니다.(50쪽)’라는 말이 유대교 경건파 사이에 전해온다고 합니다. ‘목격자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우리 모두 목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65쪽)’라고 저자는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