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 - 소돔과 고모라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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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뒤랭부인의 살롱은 발베크에서도 작은 열차를 타고 1시간을 가는 라 라스플리에르에 있습니다. 부르주아답게 열차를 타고 살롱에 오는 분들을 위하여 역까지 마차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 살롱에 초대받지 못한 지역의 유력인사는 ‘저녁 식사 하나 때문에 이런 밤중에 한 시간이나 기차를 타게 하는 것을 뻔뻔한 일’이라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아마도 살롱에 초대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이 섞여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마르셀의 경우 만찬에 초대받은 것도 기쁘지만, 작은 열차로 가는 여행이 더해져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행을 구현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마르셀이 알베르틴과 함께 발베크 해변으로 갈 때 탔던 작은 열차의 모습에 대한 프루스트의 서술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작은 열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나 열차가 달리는 도중에 내뿜은 연기가 한가롭게 서서히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고, 그것은 이제 거의 움직이지 않는 구름이라는 유일한 수단으로 환원되어 크리크토 절벽의 녹색비탈을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11쪽)” 이제는 증기기관차를 구경할 수 없지만, 옛 기억을 되살려보면 기차의 화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공기 중에 흩어져 사라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작은 열차가 도착하고 출발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여주는 사교적인 모습과 비유한 458쪽의 한 대목도 재미있습니다. 시골 역을 운행하는 작은 열차라서인지 발차에 여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점에 대하여 프루스트는 ‘열차 자체도 (…) 뭔가 인간적인 상냥함을 띠었다. 인내심 많고 온순한 성격의 기차는 뒤처진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오래 기다려 줬고, 출발한 후에도 사람들이 손짓하면 그들을 받아들이려고 멈춰 섰다.(458쪽)’ 이어서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은 희화화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기차와 비슷했지만, 인간은 전속력으로 기차를 따라잡고, 기차는 지혜로운 느림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사실 이미 발차한 기차를 세우려가 아등바등 뛰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런 사람을 태우기 위하여 속도를 줄이는 기차의 모습을 대비시킨 것입니다.

게르망트 대공부인의 살롱과 베르뒤랭부인의 살롱이 비교되는 몇 가지가 있는데, 대공부인의 살롱의 참석자는 드레퓌스에 반대하는 입장이 많은데 비하여 베르뒤랭부인의 살롱에는 드레퓌스 지지자가 많은 편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르뒤랭부인은 미술계에서는 인상파를 지지하고, 드뷔시와 뱅퇴유의 음악을 소개하는 입장입니다. 즉 유행의 변화에 민감하고, 혈통주의라는 낡은 가치대신 새로운 경향의 예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고 하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타락한 도시의 대명사인 ‘소돔과 고모라’를 부제로 삼고 있는 까닭인지 여기에서는 샤를뤼스와 쥐피엥 그리고 모렐, 알베르틴과 앙드레 등으로 대비되는 남녀 동성애적 접촉에 촉각을 세우는 것도 모자라 매춘업소까지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프랑스 사회의 타락상을 드러내보려는 의도는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만, 김희영 교수님의 민음사판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풍부한 각주을 통하여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것들, 예를 들면 작가가 인용한 책이나 인물 등에 대하여 설명을 붙이고 있어서 서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전체의 번역본이 한 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나오고 있어 앞서 읽은 내용들이 기억의 심연으로 사라지는 느낌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전체 이야기가 완간되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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