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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좋아하는 ㅣ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평점 :
2월에 시작한 우리 회사의 독서동아리 독심회(讀心會)에서 두 번째 읽은 책입니다. 첫 번 읽은 책은 제가 추천했던 <내 인생 최고의 책; http://blog.yes24.com/document/9821751>이었는데, 이미 읽고 독후감을 썼던 책이라서 따로 독후감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김사인 시인의 <가만히 좋아하는>는 동아리 회원이 정했는데, 아마도 시집인 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독서동아리에서 시집을 읽는 경우는 드물 것 같습니다. 제 경우도 시를 읽고 느낌을 적는 것이 참 어려운 작업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돌아가면서 인상 깊었던 시를 읽고 자신의 느낌을 발표하는 순서로 진행해보았는데 의외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김사인 시인의 시집에 붙인 문학평론가 임우기님은 백석의 맥을 잇는 시인이라고 평했습니다. 백석의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http://blog.yes24.com/document/7632402>에 실려있는 백석의 시들을 감상한 느낌은 고향집, 고향마을을 떠올리게 만들더라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좋아하는>에서는 그런 느낌보다는 조금 투박하고 거칠면서도 솔직한 시인의 속내가 읽히더라는 생각입니다. 그런가하면 ‘자연과 세속의 가난 속으로 유랑하는 시’, ‘좌절의 기억과 죽음을 애써 찾아가는 길 위에서 얻은 시’라고 규정하는 임우기 평론가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좋아하는>에서는 독특한 시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시인의 시에서 운을 떠오거나, 시의 일부를 빌어오거나, 심지어는 전문을 빌어다 시를 엮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구요?”라고 합니다.
<가만히 좋아하는>을 읽은 회원은 「깊이 묻다」라는 제목의 시를 같이 나누어 읽고 싶은 시로 꼽았습니다. “사람들 가슴에 / 텅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 사람들 가슴에 / 길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 사람들 가슴에 / 겁에 질린 얼굴 있다 / 충혈된 눈들 있다 //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날선 조선낫 하나씩 숨어 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 이유는 ‘누구나 비밀은 있고, 누구나 사연은 있고, 누구나 슬픔은 있고, 누구나 분노도 있고, 열정도 있다’는 것입니다.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지내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어냈다는 것입니다.
이 시는 또한 ‘웃음 뒤에 칼을 감추고 나는 / 계면조 뒤에 핏발선 눈을 감추고 나는 / 비겁하게도 / 비겁하게도 / 사랑을 말하네 / 역수를 건너던 자객쯤이나 되나 / 비장의 이 허장성세 / 칼은 이미 /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라네 / 있는지 없는지도 다 잊었다네’라고 노래한 시, 「소리장도」와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자신에 대한 회한을 담았다고 생각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삼십육계’라는 병법 가운데 제 10계인 소리장도(笑裏藏刀/笑里藏刀)는 허허실실로 웃음으로 칼을 감춘다는 뜻입니다. 역수를 건너던 자객은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하여 역수를 건넌 ‘형가(荊軻)의 고사를 끌어왔습니다. 소리장도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독서동아리 회원들의 나이가 참 다양한 덕분에 다양한 세월의 흔적을 나눌 수 있는 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모른다」는 제목의 시에 등장하는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를 요즘 젊은이들은 전혀 모르는 놀이입니다만, 제 경우는 추억 속에 묻어둔 어린 시절의 놀이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이런 놀이를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만, 비슷한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의 추억 속에 오롯하게 살아있음입니다. 심지어는 난개발 때문에 사라진 옛 풍경들마저도 그때를 살았던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