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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ㅣ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지난해 봄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찾아갔던 아를의 곳곳에서 고흐가 그렸던 작품들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인연과 함께 작품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찾아 읽게 된 <반 고흐, 영혼의 편지>입니다. 책을 옮긴 신성림박사님은 처음에는 ‘화가의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생과 생각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한 듯하다’라는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하여 해석되고 윤색된 글을 읽는 것은 오히려 편견을 가지게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인데, 그의 편지들을 읽은 다음에는 너무도 진솔하고 절절한 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진짜 고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생각해보니 고흐의 일생을 그린 영화도 보고, 그의 작품에 대하여 설명한 책들도 읽어보았지만, <반 고흐, 영혼의 편지>만큼 실감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주로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들을 중점적으로 골랐고, 일부는 친구와 가족, 예를 들면, 안톤 반 라파르트, 레벤스, 여동생 윌 등에게 쓴 편지도 있고, 말미에 가면 테오가 빈센트에게 쓴 편지도 들어있습니다.
편지들을 쓰인 시기에 따라서 ;화가 입문 이전부터 보리나주까지의 시기인 1872년 8월에서 1881년 4월까지의 3통의 편지를 ‘새장에 갇힌 새’라는 제목으로 묶었고, 1881년 4월에서 1881년 12월까지 에텐에서 보낸 시기에 쓴 4통의 편지를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제목으로, 1881년 12월에서 1883년 9월까지 헤이그에서의 시기에 쓴 22통의 편지들을 ‘조용한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1883년에서 1885년 11월까지 드렌테와 누에넨에서의 시기에 쓴 11통의 편지를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1885년 11월에서 1888년 2월까지 앤트워프와 파리에서 보낸 시기에 쓴 7통의 편지를 ‘생명이 깃든 색채’라는 제목으로, 1888년 2월에서 1889년 5월까지 아를에서 보낸 시기에 쓴 46통의 편지를 ‘내 영혼을 주겠다’는 제목으로, 1889년 5월에서 1890년 5월까지 생레미에서 보낸 시기에 쓴 27통의 편지를 ‘고통은 광기보다 강하다’라는 제목으로, 마지막으로 1890년 5월에서 7월까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보낸 시기에 쓴 7통의 편지를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묶었습니다. 테오가 보낸 편지들은 ‘고통은 광기보다 강하다’라는 제목에 주로 배치되었는데, 그림그리기에 빠져들면서 자아에 혼란이 생긴 시기에 형 고흐에게 힘을 실어줄 그런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편지에 곁들인 스케치라던가 편지에서 언급된 그림을 곁들여 편집되어 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때 화가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화가가 스케치, 수채화, 유화 등으로 옮겨가게 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 혹시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비칠까 노심초사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통해서 화가가 마음에 품고 있는 무엇을 내보이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합니다. 그림이 팔리지 않아서 테오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마음을 쓰고 있었으며, 혼신을 불어넣어 그린 그림을 테오에게 보내기 위하여 작업에 매달리는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68쪽)”라고 적은 편지도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것을 빚과 의무를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형식을 빌어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다. 이런저런 유파에 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99쪽)’라고 적었습니다. 정말 세상에 태어났으면 뭔가 뚜렷한 흔적을 남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만, 고흐처럼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런가하면 여동생 윌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무 기를 쓰고 공부하지는 말아라. 공부는 독창성을 죽일 뿐이다. 네 자신을 즐겨라! 부족하게 즐기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즐기는 쪽이 낫다.(156쪽)’라고 적은 부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