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대우고전총서 29
루크레티우스 지음, 강대진 옮김 / 아카넷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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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시작하는데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는 책을 발굴해낸 과정을 뒤쫓은 하버드 대학교 인문대학 존 코건 대학의 스티븐 그린블랫교수가 쓴 <1417년, 근대의 탄생; https://blog.naver.com/neuro412/221410933359>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린블랫교수가 말한 그 책의 이름은 로마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입니다. 그리스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을 계승한 루크레티우스는 세상의 모든 존재나 현상을 원자론에 기반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린블랫교수는 미와 쾌락의 향유에 관한 루크레티우스의 생각이 잘 체현된 문화가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라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1417년, 근대의 탄생>을 읽고 바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을 구입하였지만 막상 완독을 한 것은 1년여가 지난해 말 이집트를 여행하면서였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도 들고 갔지만 읽을 시간을 내지 못했고, 지난해 여름 발트연안국가를 다녀올 때도 들고 갔다가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미쳤을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도 묘한 인연 같습니다.

그린블랫교수가 <1417년, 근대의 탄생>에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요약한 것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린블랫교수가 요약한 것을 확인한데 불과한 책읽기를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에 이미 사물의 본질을 꽤뚫고 있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물의 생성과 소멸에 관하여 그가 세운 일반적인 원칙은, ‘아무 것도 무에서 생겨나지 않았고, 아무 것도 무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물들은 작은 입자, 원자로 되어 있는데, 입자들 사이에 빈공간이 있음을 간파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의 견고함, 영원함, 단순함, 그리고 불변성을 논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는 쉼 없이 운동하며, 여러 밀도를 가진 사물들 속에 결합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근대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물을 이루는 기본 입자가 원자이며, 그 원자는 양자와 중성자가 들어있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전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고, 원자핵과 전자 사이는 빈공간이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미시의 세계 뿐 아니라 거시의 세계라 할 우주과 공간의 무한함을 논파합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이처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을 뿐더러, 천체, 땅, 대기의 현상들이나 지상의 현상들에 대한 논증 역시 과학적으로 충분히 근거가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영혼의 본성과 구조, 영혼의 필명설에 대한 증명,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가 어리석은 것이라는 대목입니다. 정신과 영혼이 서로 연결되어 스스로 하나의 본성을 이뤄내는데 이는 신체의 일부라고 했습니다. 즉 인간의 정신활동의 결과로 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영원은 죽지 않는다는 견해에 반대하여 영혼의 필멸성을 증명합니다. 다만 ‘영혼이 잘게 나뉘어 바깥으로 흩어지며, 따라서 소멸한다.’라고 설명한 부분은 다소 의외라 하겠습니다. 어쩌면 사물의 본질이라 할 원자로 구성된 신체가 죽음 뒤에서 해체되어 흩어진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죽음은 그저 감각의 정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생애 동안 저지른 잘못으로 사후에 징벌을 받을 것에 대한 공포도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루크레티우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세상의 영웅호걸은 물론 에피쿠로스 자신도 삶의 빛이 다 저물자 떠나갔다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너는 떠나기를 망설이고 억울해하겠는가?’라고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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