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행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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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여행’하면 일단 기차가 하얀 설국을 달려가는, 낭만적인 풍경이 떠오릅니다. 그런 낭만적인 여행을 떠올리며 고른 책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보잉747을 납치해서 파리에 있는 에펠탑에 충돌시키겠다는 전혀 생뚱맞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비행기를 납치하기 위하여 공항검색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검색대를 지날 때마다 짜증이 난다고 했습니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처럼 저 역시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이 짜증나는 이유는 “내가 검색대를 통과하면 어김없이 그놈의 경보음이 울린다. 그러면 갑자기 거창한 게임이 시작되어 검사요원들의 손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 온몸을 더듬”기 때문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옷을 벗으라고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정말로 내가 비행기를 폭파시킬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라고 내뱉은 경우였다고 합니다. 시니컬한 응답이 보완요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탓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는데, 꼭 이런 상황을 맞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골절수술이나 관절치환술 등의 수술을 받아 몸 안에 금속을 집어넣은 분들 말입니다. 사실 검색대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몸을 더듬는 요원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 경우에 특히 짜증이 치밀곤 합니다. 그렇지만 검색대의 경보가 울렸는데도 그냥 통과한 경우가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한 주인공은 자신이 비행기를 납치해서 목표물에 충돌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을 써내려갑니다. 물론 이 글 역시 비행기와 함께 불타버릴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읽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생각대로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읽고 독후감까지 쓴 것을 보면 말입니다.

주인공이 조직 등의 사주를 받지 않은 단독 범행으로는 황당무계하다 싶은 비행기 납치라는 어마 무시한 범행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사랑하게 된 여성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한데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심지어는 환각버섯이라는 생소한 것을 먹고 벌인 파티에서도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이런 깜찍한 이야기를 생각해낸 작가가 참 대단하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벨기에 출신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매년 가을 신작을 내놓는데, 그때마다 프랑스 문단의 화제를 모은다고 합니다.

엘로이즈라는 이름의 자폐증을 가진 작가와 그녀를 돌보는 아스트라보라는 여성에 꽂힌 주인공의 이름은 조일입니다. 조일은 엘로이즈라는 이름에서 영화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무엇을 연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일과 그가 사랑하게 된 아스트라보의 이름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작가가 취재를 참 꼼꼼하게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조일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5~4세개 무렵, 호메로스에 대한 혹평으로 유명하던 그리스의 소피스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메로매스택스(호메로스의 재난)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괴테는 자신의 작품을 혹편하는 비평가를 조일로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아들의 아름을 정할 부모는 없은 것 같습니다. 사실 어머니기 조일을 가졌을 때, 부모님들은 딸일 것으로 확신하고 조에라는 이름을 미리 정해놓았다가 그냥 조에의 남성형인 조일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조일의 사랑 아스트라보는 11세기 프랑스 중세철학을 대표하는 피에르 아벨라르가 16살 연하인 제자 엘로이즈 사이에 얻은 딸입니다. 조카를 욕보였다고 생각한 중세시절의 엘로이즈의 삼촌은 사람을 시켜 피에르를 거세시켰다고 합니다. 조일의 사랑 아스트라보의 아버지 역시 피에르였고, 어머니 역시 엘로이즈였다고 합니다. 조일의 사랑 아스트라보의 아버지 피에르는 아내가 임신하고서 얼마지 않아 숭배하던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로 떠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스트라보의 어머니는 ‘카스트로주의자’가 ‘거세(castration)'에서 유래한 것이라 믿었다는 것입니다.

책의 제목이 겨울여행인 것은 조일이 두여자와 함께 벌인 환각버섯파티를 여행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가하면 ‘겨울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67쪽)’라고 하면서 ‘겨울과 사랑은 시련을 통해 욕망을 채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68쪽)’고도 합니다.

이 책의 제목 <겨울여행>은 우리에게는 <겨울 나그네>로 더 익숙한 슈베르트의 연가곡집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멜리 노통브는 ‘사랑의 파괴’와 ‘테러’를 주제로 한 작품을 즐겨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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