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영감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이른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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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떠날 때 책을 여러 권 챙겨가곤 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물론 몰입이 필요한 책까지 골고루 챙기는 편입니다. 수필도 빠트리지 않는데, 특히 철학자가 쓴 수필을 챙겨보려 노력합니다. 지난 연말에 다녀온 이집트여행에서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비롯하여 프랑스 철학자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을 챙겼습니다. <지중해의 영감>을 챙긴 이유는 ‘시적이고 명상적인 그르니에 특유의 감성과 사유가 탁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는 대목과 함께, ‘그르니에가 젊은 시절 머물거나 여행한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역, 나라, 도시들과 그 내면화된 인상을 담아내고 있다.’는 출판사의 설명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1898년 2월 파리에서 태어난 장 그르니에는 사상가이며 작가이자 철학자라고 소개됩니다. 청소년기를 대서양 연안의 브르타뉴에 속하는 셍-브리유에서 보냈습니다. 그런가 하면 1922년 철학교원자격시험에 통과한 뒤에는 40여년에 걸쳐 아비뇽, 알제, 나폴리, 몽펠리에, 릴, 알렉산드리아, 카이로, 등지를 거쳐 파리의 소르본대학에서 미학과 예술학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삶 속에는 거친 대서양의 기운과 부드러운 지중해의 기운이 공존한 셈입니다. 특히 알제리에서는 당시 고등학생이던 알베르 카뮈를 가르치면서  그의 사상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의 작품은 처음 읽었습니다. 책을 고르면서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등, 글의 주제를 얻은 지역으로 구분해놓은 목차의 작은 제목에 끌렸던 것입니다. 막상 책을 읽어가면서 서두에 있는 ‘침묵과 망설임의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의 옮긴이의 말에서 ‘문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감수성, 그리고 행간을 읽어내는 시적 자질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책을 번역하는 것이 모험이었다라는 김화영교수님의 토로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읽고 이해하는데 옮긴이의 고통의 덕을 많이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글 ‘산타 크루즈’에서는 알제리의 해안도시 오랑 시내를 굽어볼 수 있는 아이두르(Aidour)산에서 바로 본 풍경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오랑 사람들이 산타 크루즈라고 일컫는 산입니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하dis 동전들의 무더기, 저것은 오랑, 자줏빛 잉크의 반점, 저것은 지중해, 은거울 위에 뿌려진 금가루, 저것은 햇빛을 통해 보이는 벌판의 소금.(29)” 산 위로 올라갈수록 풍경은 점점 거대해져갔는데, 그런 변화에서 파성추로 때리듯 쾅쾅 울리는 베토벤의 교향곡의 주제 악장을 떠올렸다는 것입니다. <운명>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은거울 위에 뿌려진 금가루 같았다는 지중해의 모습은 이번 여행에서 알렉산드리아에 갔을 때 해안으로 연신 몰려드는 하얀 파도의 거품을 바라보면서 그르니에의 은유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이집트의 기자에서 만난 피라미드, 아부심벨에 있는 람세스와 네페르타리 신전, 아스완에 있는 필레신전, 콤옴보와 에드푸의 호루스신전,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 그리고 왕가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에 있는 파라오와 왕비의 묘, 합세슈트 장제전 등, 우리가 본 모든 것은 이집트 고왕국이 남긴 죽은 자들을 위한 건축물이었습니다. 즉 산자들을 위한 건축물은 없었습니다. 그르니에 역시 이런 점이 마음에 걸렸던 가 봅니다. “산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도시 카이로와 바로 이웃한 저 거대한 사자들의 도시에서라면 나는 그다지 마음이 편치 못했으리라, (…) 산 사람들의 도시와 거의 맞먹는 크기의 도시, 유령들이 모시는 유령들의 도시(169쪽)”

그래서인지 그리니에가 로마의 유적, 특히 죽은 자들을 모신 묘지에서 그가 읽어낸 바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 곁으로 무심히 지나가는 그대 길손이여, 미안하지만 그대 또한 그렇게 걸어가 봐야 소용없으리라. 그대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말테니.”(75-76쪽)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만,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베로나에서 만난 묘지에서 느낀 바도 기억해둘 만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척도’에 맞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찾았다면 그 삶을 버려야 한다. 자신에게 꼭 맞는 삶이란 없으니 말이다.(97쪽)” 젊을 때는 열심히 살고 나이 들어 죽을 때가 되면 미련을 두지 말고 모두 내려놓으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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