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 시인동네 시인선 119
배연수 지음 / 시인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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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겨울비가 2박3일 오더니, 오늘은 구름이 하늘을 덮었습니다. 사무실 창밖으로 늘어서 있는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치악산 정상도 구름에 살짝 가려졌습니다. 며칠째 미루고 있던 시집『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를 읽은 느낌을 정리하는데 안성 맞춤한 날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시집은 블로그 친구이신 파란자전거님께서 처음 세상에 내놓으신 시집입니다.

시집을 받아 열어보니, ‘이건 내가 나를 속이는 거짓말 / 네가 빤히 보고 있는데.’라는 시인의 말의 말이 뒷통수를 세게 때리는 듯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모두 속일 수 있으려니 싶어도,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걸 혼자서만 잊고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시집을 받아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한 꼭지씩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보았습니다. 단숨에 읽어내기에는 생각거리가 많아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시, 「봄」을 여는 ‘한 걸음 앞서서 / 차 문을 열어주는 일’을 언제 해보았나 싶었습니다. 젊어서는 아내에게 차문을 열어주기도 했는데, 아내와 함께 차를 타본 게 언제던가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이어지는 ‘바람이 매화꽃을 열 듯 /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말입니다.

이어지는 시들을 읽으면서 어디서 많이 본 풍경 같다는 느낌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서 시제(詩題)를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론가 오민석교수님이 ‘일상생활이 시의 형태로 분출된 한 예로 보아도 좋다’라고 한 것이 참 적절하다 싶었습니다. 다만 ‘그는 마치 환자의 횡설수설을 통해 환자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정신과 의사처럼, 혼란스레 산개(散開)되어 있는 일상성의 기호(sign)들을 통해 세상의 바닥을 들여다본다.’는 대목은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시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시 평론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먼집」이라는 제목의 시의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긴 어머닌 / 걸음 옮기는 일도 잊어버리셨다.’라는 대목을 보면 혹여 시인의 어머니는 요양원에 모셔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샅길에서 만난 개의 걸음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며, 거동이 어려워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린 것 같습니다. 그런 어머니께서 집으로 돌아오실 수 없을까 하는 걱정을, ‘어머니, 어머니의집이 보이나요 / 제 앞에는 자꾸만 눈이 내려요’라고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쏟아지는 눈물을 마침 쏟아지는 눈발로 가리려 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집에서 모시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전처럼 대가족이 모여 산다면 서로 역할을 나누어 돌볼 수도 있겠지만, 요즘처럼 단출한 식구로는 돌봄을 맡은 가족이 버텨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양병원 혹은 요양시설에서 돌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하여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오민석교수님은 시인이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엄마라는 원초적이며 절대적인 대상을 상실하거나 상실할 가능성 앞에 놓인 아이의 불안과 공포를 보여준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하지만 석가모니께서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만나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라고 회자정리(會者定離)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처럼 우리는 언젠가 닥칠 이별을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별을 강제당하는 것보다는 조금씩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 덜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맑았다 흐렸다하는 날씨의 변화에 너무 민감하지 않고 ‘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하신 시인께 ‘그냥 맑음이라고 대답’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기억」이라는 시에서는 산통의 기억을 지운 산모를 보면서 기억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시인에게 ‘기억’이 신의 선물이라면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살면서 겪은 모든 일들을 기억한다면 인간은 분명 제명에 죽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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