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비밀의 세계
커트 스테이저 지음, 김소정 옮김 / 까치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어렸을 적 종갓집에 가면 사랑채가 참 좋았습니다. 사랑채 마당에 있는 작은 정원도 좋았지만, 야트막한 담 너머로 마을 방죽을 둘러싼 아랫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이 참 좋았기 때문입니다. 아랫들과 전군도로 너머 먼들까지도 적시던 방죽은 이제 메워져 마을회관을 비롯한 주택들이 들어서 손바닥 만하게 쫄아 들어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어렸을 적 기억에 남아있는 호수풍경은 소로우의 <월든>을 읽으면서 더 강화되고 있어, 언젠가 그런 곳에 집을 짓고 여생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 호수를 바라보거나 배를 저어 호수 위를 지날 때는 주로 물 위의 풍경에만 마음을 쓰기 마련입니다. 제가 낚시에는 별 관심이 없는 탓인지 수면 아래의 세계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책을 만났습니다. 미국 뉴욕에 있는 폴스미스 대학 자연과학부의 커트 스테이저교수가 쓴 <호수, 비밀의 세계>입니다.

‘호수’하면 물고기, 물고기가 먹는 프랑크톤, 물풀, 그리고 세상을 한참 시끄럽게 했던 녹조, 홍조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거시 및 미시 세계 이외에도 호수는 호수를 둘러싼 지역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호소학(湖沼學)이라는 학문도 있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월든은 미국 최초의 호소학자라고도 합니다.

<호수, 비밀의 세계>는 호소학을 전공한 저자가 찾아 연구한 몇 개의 호수를 중심으로 하여 호소학이 무슨 연구를 하는지 설명합니다. 그 첫 번째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수입니다. 당연히 월든 호수가에 오두막을 짓고 산 소로우가 월든호수를 어떻게 탐색했는가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두 번째는 저자가 살고 있는 뉴욕 주 폴스미스에 있는 블랙호수를 이야기합니다. 이야기 중에는 미국 정부의 내수면 관리의 허점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로테논이라고 하는 독극물을 풀어 호수에 사는 물고기를 제거한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호소학을 창시한 스위스 의사 프랑수아 알퐁세 포렐이 탐사했던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에 있는 제네바호수입니다. 그리고 카메룬의 바롬비음보 호수의 이야기를 하는데, 두 호수는 저자가 호소학에 입문했을 때 탐사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아프리카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해당하는 말라위, 탄자니아, 모잠비크에 걸쳐있는 말라위 호수,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에 걸쳐있는 빅토리아 호수들입니다. 아프리카 호수에서는 악어를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에 있는 갈릴리호수와 사해입니다. 바다보다 낮은 곳에 있어서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은 결코 바다로 흘러들지 못하고 증발되어 사라지는 특별한 곳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섯 번째는 러시아의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 호수를 비롯하여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겨울왕국의 호수를 탐사한 경험을 적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미국 뉴욕주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적이 없는 가히 인류의 유산(遺産)이라 할 만한 호수들을 찾아 나선 일을 적었습니다. 유산호수의 바닥을 코어채취하면 호수를 둘러싼 기후변화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작업은 어느 호수에서도 할 수 있고, 자연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방향도 찾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호수를 그저 구경거리로 즐기는 차원을 넘어서 지질학, 기후학 등 다양한 영역으로까지 확대해서 연구하는 호소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낚시로 잡을 물고기를 풀어준다고 해도 스트레스와 외상으로 15퍼센트는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읽은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잡을 물고기를 풀어준다는 것은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가식에 불과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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