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 인류 최초의 세계도시 알렉산드리아, 그 탄생과 몰락
만프레드 클라우스 지음, 임미오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알렉산드리아’하면 프톨레마이오스가 세운 도서관이 생각납니다. 물론 오랜 과거에 불타 사라지고 흔적이라도 남아있을까 싶습니다만, 그래도 이집트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웬지 알렉산드리아가 빠지만 섭섭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 눈에 띄어 읽게 되었습니다. 흔히 제국이나 왕국, 혹은 국가의 역사를 정리한 역사책은 많지만, 도시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읽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인류 최초의 세계도시 알렉산드리아, 그 탄생과 몰락’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것처럼, 도시의 역사인데, 특히 ‘인류 최초의 세계도시’라는 점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쓴 만프레드 클라우스 교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요한 볼프강 괴테 대학의 고대 사학과에서 로마황제 시대사와 고대 사회사를 전공한 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알렉산드리아의 역사를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하여 건설된 시점부터 아랍사람들이 점령할 때까지의 역사, 그러니까 로마제국을 거쳐서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까지로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배하던 기원전 331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프톨레아미오스 왕조가 로마제국에 무너지고 로마제국의 속주로 편입되었던 기원전 30년부터 로마제국이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나뉜 시점에 해당하는 서기 284년까지, 속주의 수도였던 시기, 마지막으로는 서기 284년부터 641년까지인데 이 시기는 동로마제국의 영역에 속하면서 618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잃었던 이집트를 629년에 되찾았다가 642년 아랍의 우마위야 왕조에 빼앗길 때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동로마제국은 정교일치의 시기였기 때문에 대주교에 의한 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춘 것 같습니다.

나일강이 지중해로 열리는 하구에 세워진 도시 알렉산드리아에는 고대 이집트의 원주민보다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입된 이방인이 주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도시를 처음 건설한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왕이었고, 알렉산드로스가 젊은 나이에 죽은 뒤로는 마케도니아의 장수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리아를 거점으로 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개창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뒤로는 로마제국이 지배를 받았으니, 알렉산드리아는 이방인의 도시, 즉 세계인의 도시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일강 중 상류에서 살던 이집트 원주민 역시 알렉산드리아가 번창하면서 이주해 들어왔을 것이므로, 이집트 원주민의 문화, 특히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는 여러 신을 믿었던 로마제국이니 만큼 이집트 고유의 신을 받아들여 통치의 이념으로 삼아야 했을 것 같습니다. 책의 앞부분을 읽다보면 이제는 사라진 프롤레마이오스 왕국 시절 알렉산드리아에서 주목받았을 여러 건축물을 비롯하여 도시 시설들이 마치 지금도 있는 것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막상 알렉산드리아에 가면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가 설명하는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모습은 고고학적 성과로 확인된 유물이나 고대 그리스 혹은 로마 사람들이 남겨놓은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실감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로마제국에서 활약한 많은 사람들, 특히 저의 전공인 의학 부문의 전문가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고 업적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활약한 의사 헤로필로스는 당시에 이미 대규모로 시체를 해부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를 비롯하여 기독교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한 개략적인 정황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이 카이사르의 방화로 불타버렸다고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