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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들 - 어느 누구도 영원히 읽지 못할 그 작품
조르지오 반 스트라텐 지음, 노상미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1월
평점 :
랄프 이자우의 소설 <비밀의 도서관; http://blog.yes24.com/document/7761021>에 나오는 도서관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책으로 출간됐지만 유통이 금지된 금서 정도는 아주 평범한 소장도서에 불과하며, 과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처럼 불에 타서 세상에서 사라진 책은 물론 저자의 생각만으로 기획단계에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까지도 소장되어 있는 환상의 도서관인 것입니다.
조르지오 반 스트라센의 <사라진 책들>을 읽으면서 비밀의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작가이자 번역가이면서 뉴욕 이탈리아 문화원 원장인 저자의 독특한 위치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책들에 관한 소식을 뒤쫓는 것이 용이하게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라진 책들>은 1824년부터 2010년까지 원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한 8개의 책이 정말 사라졌는지, 어떻게 사라졌는지, 왜 사라졌는지 등을 뒤쫓은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그 8종류의 책은 무명의 작가가 쓴 완성도가 떨어지는 원고가 아니라 적어도 문학적으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본 것들로서 헤밍웨이 같이 유명한 작가도 있지만,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도 있는 것 같습니다.
8종류의 책을 쓴 저자의 면면을 보면, 이탈리아 작가 로마노 빌렌치의 <거리>, 조지 고든 바이런 경의 <회고록>, 헤밍웨이의 초기 작품들, 폴란드 작가 브루노 슐츠의 <메시아>,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죽은 혼, 후편>, 미국 작가 맬컴 라우리의 <바닥짐만 싣고 백해로>, 발터 벤야민의 미발표 원고, 영국 작가 실비아 플라스의 <이중 노출> 등입니다.
이들 작품 가운데 저자 혹은 누군가의 눈으로 확인이 된 것들도 있지만, 추정되는 원고도 없지 않은 듯합니다. 또한 원고가 사라진 원인도 다양해서 원고를 쓴 이가 직접 불태운 경우도 있고, 원고가 공개되었을 때 일어날 후폭풍을 걱정한 가족이 불태운 경우도 있으며, 누군가에 의하여 도둑을 맞은 것도 있습니다. 문제는 도둑질해 간 사람이 원고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시 돌려주지 않은 탓에 빛을 보지 못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요즈음에는 컴퓨터로 원고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작업을 하던 글이 날아가기도 합니다. 저 역시 지난 주말에 종일 작업한 원고를 갈무리하면서 오히려 삭제하는 바람에 망연자실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원고를 다시 썼습니다. 다행히 큰 틀에서는 내용의 상당부분을 되살렸지만, 원고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간결하게 써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캐나다 작가 앤 마이클스는 <덧없는 시편들>이라는 소설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고 합니다. “부재의 기억이 남아 있다면 부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 땅이 더 이상 없어도 땅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지도를 만들 수 있다.(16쪽)”
헤밍웨이 역시 “글쓰기에는 많은 비밀이 있다. 당시에는 아무리 잃어버린 것처럼 보여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사라진 것은 늘 다시 나타나 남아 있는 것의 힘이 되어준다.(70쪽)”라는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책으로 인하여 더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라진 책이 어딘가 숨겨져 있다가 세상에 등장한다거나, 아니면 사라진 책의 내용을 새롭게 써내는 경우도 없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는 사라진 책들을 읽어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사라진 책들과 관련이 있는 작가들이 쓴 다른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찾아서 읽어볼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