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칸트인가 -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서가명강 시리즈 5
김상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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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왜 칸트인가>가 눈에 확 들어온 것은 최근에 발트연안국가를 여행하는 길에 들른 칼리닌그라드에서 칸트의 무덤과 동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한다면서도 근대 서양철학의 중요한 저서들을 아직 읽지 않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의 김상환교수님께서 쓰신 <왜 칸트인가>에는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는 부제가 붙어있었습니다. 과연 그럴까 싶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서양철학에서 차지하는 칸트의 위상에 관한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라는 큰 호수로 들어오고, 칸트 이후의 모든 철학은 칸트에서 시작된 물줄기다’라는 호수비유도 수긍이 간다하겠습니다. 이밖에도 칸트를 ‘철학의 코페르니쿠스’, ‘철학의 콜럼부스’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칸트의 철학은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 등 3대 비판서를 기본 골격으로 하는데, 이 저작들을 통하여 인식론, 윤리학, 미학, 자연관 등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천문학 분야에서 코페르니쿠스가 가져온 혁명에 비유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칸트의 3대 비판서의 핵심내용을 요약하여 칸트가 근대철학에서 일으킨 혁명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깔끔하게 정리해냈습니다.

1부에서는 <순수이성비판>의 내용이 인지혁명으로 마음 모델을 혁신했다고 보았고, 2부에서는 <실천이성비판>의 내용이 윤리혁명으로 덕 윤리에서 의무의 윤리로 전환하는 전기가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3부는 <판단력비판>의 전반부는 미학 혁명으로 근대예술을 정초했다고 평가했으며, 4부에서는 <판단력비판>의 후반부에 대하여 생태 혁명으로 기계론에서 유기체론으로의 전환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평가입니다.

각 부의 말미에는 칸트에 관한 궁금증에 대한 설명을 더해두었습니다. 칸트가 3대 비판서를 집필한 이유를 정리한 대목이 있습니다. 칸트가 살던 18세기 후반은 노동 및 사회, 학문 및 가치의 분화가 활발하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철학에서도 고유한 위상과 정체성의 확립이 요구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리하여 “칸트는 3대 비판서를 통해 이론적 지식의 객관성을 따질 때의 기준, 실천적 행동의 도덕성을 문제 삼을 때의 근거, 예술적 창작의 심미적 가치를 판정할 때의 원리를 차례대로 해명하고자 했다(153쪽)”는 것입니다.

저자는 칸트의 3대 비판서에 머물지 않고 동서양의 다양한 저서들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판단력 비판>의 초반에서 다루는 심미적 체험에 대한 취미판단에 관하여 칸트는 그 질적 특징을 ‘무관심한 만족감’에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판단할 때 우리는 만족감을 누리되 그 만족감은 무관심한 만족감이라는 것인데, 이때 만족감이란 쾌감, 기쁨, 즐거움을 말한답니다. 그런데 저자는 칸트의 ‘무관심한 만족감’을 공자의 ‘사무사(思無邪)’와 견주었습니다.

<논어>의 위정편에서 공자는 <시경(詩經)>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경 삼백 편을 한 마디로 줄여 말하면, 그 핵심은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데 있다.(詩三百, 一言而蔽之曰 思無邪) (193쪽)” 이 구절에 대하여 저자는 ‘사특함이란 어떤 사적인 관심에 의해 관심에 의해 구부러진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사무사‘란 개인적인 욕심에 의해 비뚤어진 데가 없는 곧은 마음, 사특한 의도에서 해방된 순진한 마음을 가리킨다’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에 눈길이 오래 머문 이유는 최근에 우리나라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분들이 모두 새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이번 기회에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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