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 21세기 여행 사랑법
후칭팡 지음, 이점숙 옮김 / 북노마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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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날 때는 여행과 관련된 산문집을 하나 챙겨갈 때가 많습니다. 여행 중에 여행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쉽게 공감이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홍콩에 주로 거주하면서 문필활동을 하는 후칭팡의 <여행자>는 얼마 전에 발트연안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들고 갔는데, 읽을 짬을 내지 못해 도로 가져온 책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여행 중에 읽었더라면 조금 실망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두서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주제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43꼭지의 글을 1장 여행, 2장 이국(異國), 3장 시선, 4장 경계, 5장 종점이라는 소주제로 구분해놓았는데, 어떤 글들은 소주제에 부합되나 싶은 것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을 제시하면서도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해서 궁금증만 키운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행자는 우쭐하지만 곧 ‘어떻게 훈제연어를 가지고 여행할 수 있는지’ 뿐만 아니라 ‘어떻게 팩스와 같은 첨단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배워야만 했다.(221쪽)”라고 했는데, 기왕이면 그 답을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훈제연어를 가지고 여행하는 방법은 훈제연어를 진공포장하면 냉장보관하지 않더라도 며칠을 가지고 다닐 수가 있습니다.

‘여행의 종점은 죽음이다’라는 제목의 글은 여자승객이 비행기여행 중에 심장발작을 일으켜 죽음을 맞는 상황을 겪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승객이 죽음을 맞기까지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하는데 화장실에 들어간 승객이 나오지 않아 화장실 문을 열고 쓰러진 승객을 통로바닥에 끌어낸 것은 잘한 일인데, 심장박동이 있는지 확인하고 바로 누군가는 심폐소생술을 했어야 합니다. 기내에 의사가 탑승하고 있는지 방송하는 것보다 심폐소생술이 먼저가 되었어야 합니다. 결국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을 방치한 채로 비행기가 착륙한 다음 병원으로 실어가 보았자 이미 주검이 된 후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인데도 불구하고 ‘여행의 종점은 죽음이다’라고 일반화한 제목을 달아놓은 것도 아니지 싶습니다.

‘새해 여행’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새해에 떠나는 여행이 여러 모로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새해가 되면(어쩌면 설날일 수도 있겠습니다) 박물관, 미술관, 극장, 백화점, 식당, 카페 등등이 모두 문을 닫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은 새해에 의미가 큰 아시아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설날에 남미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만, 특별하게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또 조만간 연말에 출발해서 새해 첫날 돌아오는 여행을 앞두고 있기는 합니다만, 새해 첫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서 작가의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홍콩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여행객의 국적에 따라서 심사관의 대우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미국 증권사에서 일하는 동료 몇 사람이 마카오를 경유하여 홍콩의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홍콩 거류증과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아마도 미국 증권사의 홍콩지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인 모양입니다. 미국 사람이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고, 프랑스 사람은 2초, 싱가포르 사람과 타이완 사람 역시 무사히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걸린 시간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인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갑자기 ‘인도 국적을 가진 동료가 세관을 통과하지 못했다(171쪽)’라고 적었습니다. 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수하물을 찾은 다음에 세관신고를 하기 마련입니다. 세관신고를 하지 않는 나라도 있습니다. 세관문제는 관세만 물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도 사람이 왜 입국이 거부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어서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국적에 따라서 출입국사무소의 담당관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제가 겪은 일도 언제 소개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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