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들 - 존 버거의 예술가론
존 버거 지음, 톰 오버턴 엮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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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존 버거를 처음 만난 것은 평론보다는 소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김탁환작가의 산문에서 소개를 받았는데, 리스본의 28번 트램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뒤에 폴란드의 크루쿠프에 관한 이야기를 쓸 때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존 버거의 책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종류가 번역, 소개되어 있지만, 미술평론에 관한 책으로는 처음 읽게 된 책입니다.

‘나는 미술평론가로 불리는 것이 늘 싫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누구를 미술평론가라고 부르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하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미술평론가는 자신이 아주 조금만 알거나 전혀 모르는 어떤 것에 대해 판단하고, 거드름 피우며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하여 깊은 식견을 쌓아야 하며, 그 사람의 속사정까지도 잘 알고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렇지 못한 일부 평가자들이 있기 때문에 생긴 인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1959년에는 “나는 미술비평을 너무 오랫동안 써 왔고, 그것은 잘못된 작업으로 판명이 났다(22쪽)”라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톰 오버턴이 엮은 이 책은 존 버거가 대영도서관에 기증한 다양한 자료를 정리한 것입니다. 미술에 대한 존 버거의 응답의 폭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의 에세이, 전시회에 대한 평론, 동료와 가족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는 물론, 시, 소설, 희곡, 혹의 대화의 일부를 발췌하기도 했다. 그의 글이 집중력과, 상상을 통한 감정이입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시대에 대한 하나의 초상화라고 보았기 때문에 책의 제목을 <초상화>라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74개의 글을 모았습니다. 글 가운데는 기원전 3만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아르데슈 지방의 쇼베동굴에 그려진 벽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서기 1세기~3세기 무렵의 이집트 남부의 파이윰 지방에 남겨진 현존 최고(最古)의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뒤를 잇고, 그리고는 15세기 중반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필두로 하여 현재 생존하여 활동하고 있는 화가에 이르기까지 다루어졌습니다. 일종의 다양한 역사적 시기의 예술가들에 대한 연대기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보면, 존 버거의 관점에서 본 미술사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엮은이의 생각입니다.

어떤 글에서는 화가의 작품을 두루 섭렵하면서 화풍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글에서는 화가의 삶과 생각을 두루 짚어내기도 합니다. 아마도 다양한 자료원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보니 통일된 형식이나 주제로 제한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읽다보면 자신의 주관에 따른 솔직함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잘 알려진 예술가라해서 평론이 두루뭉실하지 않고 소신껏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점도 저자에 대한 믿음을 더하게 만들었습니다.

역시 아쉬운 점은 적지 않은 미술작품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도 제한된 숫자의 작품만 그것도 흑백으로 싣고 있다는 점입니다. 존 버거가 이야기한대로 ‘단순한 기록’ 수준으로 참고하면 되겠다는 이야기이지만, 설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컬러사진이면 금상첨화였겠고, 흑백사진이라도 좋으니 도판을 더 담았더라면 좋았겠습니다.

특히 근현대의 잘 알려진 화가들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어느 정도 작품이나 화풍에 대한 작은 앎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으나, 솔직히 말씀드려 이름을 처음 듣는 화가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그린 드로잉도 몇 점 소개되고 있으며, 분명 도판이 있어야 할 자리가 덩그라니 빈 채로 있는 공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알고 있는 화가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처음 듣는 내용도 많았던 점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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