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이 숟가락에게
신진호 지음 / 북나비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7년에 다녀왔던 영국여행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역시 영국을 다녀온 동료의 시를 같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산문을 쓰는 저와 시를 쓰는 동료의 시선이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를 곰곰 생각해본 끝에 시인은 사물을 미분하듯 잘게 쪼개서 사물의 진수를 뽑아내고 그에 맞는 시어로 표현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산문을 쓰는 저는 적분하듯 사물에 관한 것들을 모아들여 진면목을 표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적분을 하는 제가 미분을 하는 시를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한 분의 시인하고 일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7년의 습작기간을 거친 끝에 등단을 했고, 등단 1년 만에 낸 시집을 주셨습니다. 등단은 신중하게 이루었지만, 등단 후에는 더 활발하게 시작활동을 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시집 발간을 축하하는 글에서 소설가아며, 수필가이자 시인이신 김선화님은 ‘그는 사물 하나에서조차 인간의 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소소한 특징을 발견하여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눈길이 따스하다.’라고 적으셨습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미적분학론이 그리 나쁜 비유는 아닌 것 같다는 자가당착에 빠져봅니다.

김선화 시인의 말씀처럼 신진호시인은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소재를 시로 옮겨왔습니다. 주부이면서 직장 일도 열심히 하시면서 시는 언제 쓰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젓가락이 숟가락에게>는 모두 150편의 시를 비슷한 주제에 따라 다섯 묶으로 나누었습니다. 1부 ‘젓가락이 숟가락에게’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상황들을 노래하였습니다. 「한밤의 독주회」는 코고는 소리를 피아니시모, 크레센도, 포르티시모 등, 음악을 연주하는 기호로 해석하고 있어, 읽어가다 슬며시 웃음이 터집니다. 표제작이기도 한 「젓가락이 숟가락에게」는 스무 해를 넘게 함께 짝을 맞춰온 젓가락과 숟가락이 어느 날 끓는 용광로에서 만나 작은 냄비로 만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평생을 희노애락을 같이 한 것도 모자로 다음 생에서는 한 몸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하니 그 사랑이 얼마나 극진한지 알듯합니다.

3부 ‘만약에 당신이 계시다면’에서는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그려냈습니다. 특히 먼저 가신 아버님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나이 들어가시는 어머님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읽혔습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세상에 계시지 않는 저의 마음도 같이 애절해지는 느낌이 들어 코끝이 먹먹해졌습니다.

시인과 제가 근무하는 직장은 치악산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먼발치에서 보는 풍경이 매일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런 치악산 모습을 몇 편의 시에 담았습니다. ‘어느 비 갠 날 아침’이라는 부제가 달린 시 「치악산2」는 이렇습니다. “풀빛 산허리에 / 흰 도포자락 너울너울 / 푸른 산봉우리 / 우윳빛 띠 두르니 / 구름바다 위에 뜬 / 오묘한 초록 섬 // 한 사람 / 신선 되어 / 그 섬을 탐하네.” 같은 산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 본 저와는 완전 차원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시인이 부럽습니다.

치악산에 대한 여러 편의 시를 읽으면서 세잔이 고향인 액상 프로방스에 있는 생트 빅투아르(Sainte-Victoire)산을 그렸다는 것을 상기합니다. 세잔은 사물의 본질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색채만으로 원근법을 나타내려한 시도라던가 대상을 수많은 도형으로 나누어 다양한 색으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 산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는 동네 뒷동산에 올라 생트 빅투아르를 바라보았습니다만, 별다fms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으니, 제가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쓸 재주가 없는 것은 확실한듯합니다. 만약 신지호 시인이 엑상 프로방스에 있는 세잔의 아틀리에가 있는 동네의 뒷동산에 올라 생트 빅투아르를 바라보면 아주 좋은 시를 써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